나를 울린 시 (18) - 낙엽의 노래 낙엽의 노래 홍윤숙 헤어지자 우리들 서로 말없이 헤어지자 달빛도 기울어진 산마루에 낙엽이 우수수 흩어지는데 산을 넘어 사라지는 너의 긴 그림자 슬픈 그림자를 내 잊지 않으마 언젠가 그 밤도 오늘밤과 꼭 같은 달밤이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흩어지고 하늘의 별들이 길을 잃은 밤 너는 별을 가.. 명시감상 2007.07.10
나를 울린 시 (17) - 영산 영산(靈山) 김광규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靈山)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 명시감상 2007.07.08
나를 울린 시 (16) - 멀리까지 보이는 날 멀리까지 보이는 날 나태주 숨을 들이쉰다 초록의 들판 끝 미루나무 한 그루가 끌려들어온다 숨을 더욱 깊이 들이쉰다 미루나무 잎새에 반짝이는 햇빛이 들어오고 사르락 사르락 작은 바다 물결소리까지 끌려들어온다 숨을 내어 쉰다 뻐꾸기 울음소리 꾀꼬리 울음소리가 쓸려나아간다 숨을 더욱 멀.. 명시감상 2007.07.06
나를 울린 시 (15) - 그대 생각 그대 생각 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 명시감상 2007.07.05
나를 울린 시 (14) - 내 사랑은 내 사랑은 송수권 저 산마을 산수유꽃도 지라고 해라 저 아랫뜸 강마을 매화꽃도 지라고 해라 살구꽃도 복사꽃도 앵두꽃도 지라고 해라 하구 쪽 배밭의 배꽃들도 다 지라고 해라 강물 따라가다 이런 꽃들 만나기로서니 하나도 서러울 리 없는 봄날 정작 이 봄은 뺨 부비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때문 저.. 명시감상 2007.07.04
나를 울린 시 (13) - 별 별 이성선 손에 쥔 것 다 놓아 버리고 길가에 낙엽처럼 구겨져 잠든 젊은 거지 이마에 별이 떴다. 초경으로 놀라 우는 소녀, 밤내 잠들지 못하는 그녀 얼굴이 그의 추운 꿈길 속 풀꽃 위에 맑은 이슬로 맺혀 떤다. 이 세상에 첫사랑처럼 가슴을 떨리게 하는 일이 달리 또 있을까. 첫사랑은 나 아닌 또 다.. 명시감상 2007.07.02
나를 울린 시 (12) - 두만강 푸른 물 두만강 푸른 물 이대흠 파고다 공원에 갔지 비오는 일요일 오후 늙은 섹소폰 연주자가 온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대고 있었어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 그 푸른 물 속에 섞이고 있었지 두 손을 꼭 쥐고 나는 푸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섹소폰의 주둥이 그 깊은 샘을 바라보았지 백두산 천지처럼 움.. 명시감상 2007.07.01
나를 울린 시 (11) - 지붕 지붕 박형준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지붕이 비슷비슷한 골목을 걷다가 흰 비닐에 덮여 있는 둥근 지붕 한 채를 보았습니다. 새가 떨고 있었습니다.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날개를 접고 추락한 작은 새가 바람에 떠밀려가지 않으려고 흰 비닐을 움켜쥔 채 조약돌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네모난 옥상들 .. 명시감상 2007.06.29
나를 울린 시 (10) - 물소리를 꿈꾸다 물소리를 꿈꾸다 이정록 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 고치의 올 올을 아쟁처럼 켜고 나는 그 숨소리를 숨차게 쟁이며 분꽃 씨처럼 늙어갈 것이다 고치 속이, 눈부신 하늘인 양 맘껏 날아다니다 멍이 드는 .. 명시감상 2007.06.28
나를 울린 시 (9) - 겨울 강 가에서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명시감상 200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