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시 (8) - 길 '길' 윤제림 꽃 피울려고 온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트럭 하나 달려오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꽃 뒤에 가 숨는.. 명시감상 2007.06.26
나를 울린 시(7) - "찌르레기의 노래 3" '찌르레기의 노래 3 ' 이가림 지상의 오막살이 집 한 채 그 아궁이에 기어드는 가랑잎같이 그대 따스한 슬픔에 내 언 슬픔을 묻을 수 있다면 이 세상 밤길뿐이었던 나날들 언제나 캄캄했다고 말하지 않으리 우리가 정녕 생의 거미줄에 매달린 하나가 되기 위한 두 개의 물방울같이 마주보는 시선의 신.. 명시감상 2007.06.22
나를 울린 시(6) - "얼음" '얼음 ' 이동순 봄의 공세에 산골짜기의 얼음은 일제히 산정으로 떠밀려 올라간다 산정에 밤이 오면 얼음은 달빛 속에서 수정 같은 이를 드러내고 차디차게 웃는다 우거진 산죽의 뿌리를 껴안고 몸을 떤다 올 테면 와라 봄이여 너희들이 숲을 샅샅이 뒤져 나를 찾을 때 내 투명한 유리구두는 이미 어디.. 명시감상 2007.06.22
나를 울린 시(5) - "너에게" '너에게' -여하시편 서정춘 애인아 우리가 남 모르는 사랑의 죄를 짓고도 새빨간 거짓말로 아름답다 아름답다 노래할 수 있으랴 우리가 오래 전에 똑같은 공중에서 바람이거나 어느 들녘이며 야산 같은 데서도 똑같이 물이고 흙이었을 때 우리 서로 벗은 알몸으로 입 맞추고 몸 부비는 애인 아니었겠.. 명시감상 2007.06.22
나를 울린 시(4) - "오지 않는 꿈" ‘오지 않는 꿈’ 박 정 만 초롱의 불빛도 제풀에 잦아들고 어둠이 처마 밑에 제물로 깃을 치는 밤, 머언 산 뻐꾹새 울음 속을 달려와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문을 열고 내어다보면 천지는 아득한 흰 눈발로 가리워 지고 보이는 건 흰눈이 흰눈으로 소리 없이 오는 소리뿐. 한 마장 거리의 .. 명시감상 2007.06.22
나를 울린 시(3) - "겨울 수화" ‘겨울 手話수화’ 최승권 몇몇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식 송사의 마지막 구절이 키 작은 여학생들을 일제히 흐느끼게 할 때 서울 어느 목공소 조수로 취직했다는 광오와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한 상동이의 얼굴은 금 간 유리창 너머 갈매기 두 마리로 날아오르고 교정 구석 단풍나무 한 그루로 선 나는 .. 명시감상 2007.06.22
나를 울린 시(2) - "월식" ‘月蝕(월식)’ 김명수 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국 성큼 성큼 남겨 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 주던 저녁 달은 별과 함께 우리 인간에게 .. 명시감상 2007.06.22
나를 울린 시(1) - "사평역에서"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 명시감상 20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