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

나를 울린 시 (13) - 별

펜보이 2007. 7. 2. 18:18
 

 별


 이성선


  손에 쥔 것

  다 놓아 버리고

  길가에

  낙엽처럼 구겨져 잠든

  젊은 거지

  이마에

  별이 떴다.


  초경으로 놀라

  우는 소녀,

  밤내 잠들지 못하는

  그녀 얼굴이

  그의 추운 꿈길 속

  풀꽃 위에

  맑은 이슬로 맺혀

  떤다.


  이 세상에 첫사랑처럼 가슴을 떨리게 하는 일이 달리 또 있을까.  첫사랑은 나 아닌 또 다른 세상과의 첫 만남이기에 그런지 모른다.  세상의 어두움에 젖기 전 그 순수한 마음으로 이성을 은밀히 좋아하는 감정이야말로 첫눈의 순결성과 비유할만하다.  이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체적을 가진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가정적인 환경이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첫사랑에는 크고 작음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좋아하는 대상의 가정적인 환경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따위의 외적 조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본능적인 것이기에 그렇다.  누가 시키거나 가로막고 나설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감정 앞에는 그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다.  그 좋아한다는 감정은 누구에게도 들킬 리 없는 오직 혼자만의 것인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지워질 수 없는 화석이 된다.  설령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으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좋아하는 상대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하며 사랑하고 싶어지는 감정은 가장 순수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혹여 남에게 들킬까봐 마음 졸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는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까 싶어 공연히 부끄러워지기 일쑤이다.  순수한 것에는 부끄러움이 따른다.  잘못한데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그 순수한 감정이 부끄러움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 부끄러움은 지순한 아름다움이다.  부끄러움은 무언가를 감추고 싶다는 심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라서 그렇다. 

  이성선 시인의 “별”은 첫사랑의 소중함이 인간 삶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시인은 별의 아름다움에 취해 삶 자체를 온통 그런 꿈으로 채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밤하늘의 별은 시인에게는 순수한 삶을 지탱케 하는 하나의 본보기였고 기둥이었지 싶다.  그런고로 별은 이상향을 밝히는 상징적인 존재였으리라.  이 세상의 풍진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맑고 찬란하게 빛날 뿐인 별의 그 존재방식처럼 시인 또한 그런 삶의 태도를 견지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의 시이기에 “별”은 단순히 밤하늘의 밝히는 아주 먼 별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닐 듯싶다.

  그렇다.  “별”이라는 제목이 지칭하듯이 직접적인 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별과의 연관성을 찾자면 그것은 별의 그 순수성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젊은 거지가 사랑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진 호흡이 짧은 시이다.  극히 짤막한 시속에 추함(거지)과 아름다움(초경의 소녀)를 대비시킨 시적인 구성이 일품이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손에 쥔 것/다 놓아 버리고/길가에/낙엽처럼 구겨져 잠든/젊은 거지/이마에/별이 떴다.’ 

  ‘손에 쥔 것/다 놓아 버리고’에서 아무 것도 소유할 것 없는 거지가 손에 쥔 그 무엇조차 놓아버렸다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잠든다는 사실은 죽음의 상태나 다름없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것이 곧 죽음인 까닭이다.  죽음처럼 깊은 잠은 잠시나마 세상과의 절연을 의미한다.  설령 일상적인 삶에의 복귀를 전제로 하는 잠일지언정 현실에서 떠남으로써 세상과의 갖가지 구차한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된다.  젊은 거지는 일상적인 삶에 필요한 그 무엇조차 손에서 놓아버릴 만큼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구걸하는데 필요한 깡통은 거지에게는 하나의 재산이다.  깡통은 비록 먹을 것을 담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그나마 거지에게는 재산과 같은 가치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깡통을 암시하는 표현은 없다.  하지만 손에 쥔 것이라는 표현은 거지 자신의 삶과 관련된 그 무슨 소중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 소중한 것조차 놓아버린 채 ‘낙엽처럼 구겨져 잠든’ 그 하찮은 존재에게도 별은 따스한 손을 건넨다.  ‘젊은 거지/이마에’가 앉는 것이다.

  별은 세상에 대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에게 균등하게 빛을 나누어 줄 따름이다.  거지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없다.  별은 현실적인 일체의 희망을 버린 채 잠든 젊은 거지에게도 어김없이 희망의 상징이 된다.  잠든 거지의 꿈을 은밀히 지켜주는 것이다.

  거지의 꿈은 이렇게 전개된다.  끝내 아득한 꿈에 지나지 않는 별의 존재처럼 거지의 꿈은 실현가능성이 전무한 허망함이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불현듯 현실적인 일체의 희망을 놓아버린 거지에게도 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다. 

  ‘초경으로 놀라/우는 소녀/밤내 잠들지 못하는/그녀 얼굴이/그의 꿈길 속/풀꽃 위에/맑은 이슬로 맺혀/떤다.’

  첫사랑이 순수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초경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비로소 한 여성으로서의 완전한 몸이 되는 그 순간은 소녀에게는 두렵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놀라고 운다.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순정한 소녀를 마음속에 담고 있는 젊은 거지에게도 감히 꿈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못해 신선하다.  시인의 눈은 별처럼 평등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차별을 걷어치우는 그 균등한 시선이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린 가슴’은 세상의 모든 것에 똑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아름다운 시인의 눈에 대한 전적인 공감을 뜻한다. 

  젊은 거지의 잠 속에서 소녀의 얼굴은 ‘그의 추운 꿈길 속/풀꽃 위에/맑은 이슬로 맺혀/떤다.’  풀꽃 위에 맺힌 맑은 이슬과 별은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별이 우리 모두의 이상세계이듯이 젊은 거지에게도 별의 의미는 다를 리 없다는 일깨움이야말로 이 시가 감추고 있는 웅변이자 호소력이다.  잠은 누구에게나 똑 같다.  젊은 거지의 잠 또한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아름다운 꿈을 꾼다.  시인의 섬세한 감성의 촉수는 고정관념 및 선입관의 포로가 되어 있는 우리의 의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세계를 자유롭게 항해한다.  이 시에서도 시인의 감성이 얼마만한 깊이 및 사랑을 지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