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 (28) -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강연호 문득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이 만드는 저 물 위의 파문, 언젠가 그대의 뒷모습처럼 파문은 잠시 마음 접혔던 물주름을 펴고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파문의 뿌리를 둘러싼 동심원의 기억을 기억한다 그 뿌리에서 자란 나이테의 나무를.. 명시감상 2007.07.30
나를 울린 시 (27) - 고여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고여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우포에서 나희덕 후두둑 빗방울이 늪을 지나면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 새끼를 치기 시작한다 녹처럼 번져가는 풀은 진흙뻘을 기어가는 푸른 등처럼 보인다 어미 몸을 먹고 나온 우렁이 새끼들도 기어간다 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풀들 그 사이로 빈 우렁이 껍데기들 떠다.. 명시감상 2007.07.24
나를 울린 시 (26) - 절간 이야기 19 절간 이야기 19 조오현 사내 대장부 평생을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로 살았던 雪峰(설봉)스님은 말년에 부산 범어사에 주석했는데 그 무렵 곡기를 끊고 곡차를 즐겼지요. 그날도 자갈치 그 어시장 그 많은 사람사람 사투리사투리 물비릿내물비릿내 이것들을 질척질척 밟고 걸어 들어가니, 생선좌판 위.. 명시감상 2007.07.23
나를 울린 시 (25) - 역 역 한성기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만 역처럼 내가 있다. 사람은 애초부터 철학적인 존재라고 했다. 무.. 명시감상 2007.07.21
나를 울린 시 (24) - 소녀는 배가 불룩했습니다 소녀는 배가 불룩했습니다 전영경 섭씨 0도 해빙 봄 초원 꽃 나비 나비가 있어 봄은 더욱 좋았습니다 라일락 무성한 그늘 밑에 오월은 있었습니다 소녀가 붉으스런 얼굴을 가리우며 아니나 다를까 계절을 매혹했습니다 솟구친 녹음을 헤쳐 소녀는 난맥(亂脈)을 이루었습니다 라일락 무성한 꽃 가루 속.. 명시감상 2007.07.20
나를 울린 시 (23) - 슬픔으로 가는 길 슬픔으로 가는 길 정 호 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 명시감상 2007.07.18
나를 울린 시 (22) - 장사를 하며 장사를 하며 양애경 더 이상 세상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을까 구겨진 지폐 몇 푼을 깎자 못 깎는다 흥정을 하고 욕을 먹고 돌아오는 밤에도 별. 너는 나뭇가지 끝에 지상의 모든 빛을 흐리며 빛나고 있구나 하지만 이제 나는 알고. 슬프다 멀리서 반짝이기만 하는 것은 몇 억년 이후에라도 닿을 수 없는 .. 명시감상 2007.07.16
나를 울린 시 (21) - 해빙기 해빙기(解氷期) 박이도 봄밤엔 산불이 볼 만하다. 봄밤을 지새우면 천 리 밖에 물 흐르는 소리가 시름 풀리듯 내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다. 깊은 산악마다 천둥같이 풀려나는 해빙(解氷)의 메아리 새벽 안개 속에 묻어 오는 봄 소식이 밤새 천 리를 간다. 남 볼래 몸풀고 누운 과수댁의 아픈 신음이듯 봄.. 명시감상 2007.07.14
나를 울린 시 (20) - 지상 지상 박제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별을 가지고 있다. 잃어버렸다가도 다시 찾게 된다. 개중엔 이승의 몸을 버리고서야 자기의 별을 찾기도 한다. 어느 날 무심히 밤하늘을 바라볼 때 갑자기 한줄기 불꽃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면 그대 곁의 어느 누가 또 보이지 않으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별과 운.. 명시감상 2007.07.12
나를 울린 시 (19) - 도봉 도봉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이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 명시감상 2007.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