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꿈 (49) - 비 비 雨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열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소년 거지 혼자서 숲길을 가고 있었다. 손에는 방금 전에 길옆에서 꺾은 빨간색의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소년 거지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소년 거지는 들꽃을 가슴에 안은 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숲길을 가고 .. 우화집 2007.08.20
미술시평 (18) - 아, 미술대전이여! 미술시평 아, 미술대전이여! 올해 구상계열 미술대전은 여느 해와 달리 수개월 앞당겨져 8월 삼복 더위 중에 열렸다. 11월에 열린 지난해에 비하면 무려 3개월이나 빠르게 열린 셈이다. 그러다 보니 1년 후 비슷한 시기에 열리겠거니 하고 여유를 가지고 준비를 한 출품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해 하며 땀.. 미술시평 2007.08.20
나를 울린 시 (34) - 애가 애가 이창대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숨막히는 이별은 말하지 않으리. 여기로 불어오는 바람 서러웁고 저기서 울리는 종소리 외로와도 가만히 견디며 들으리라 커다란 즐거움은 아픔 뒤에 오는 것. 흐르는 강가에 가슴은 설레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이별의 뜻을.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 명시감상 2007.08.18
나비 꿈 (48) - 안개 안개 霧 첫새벽이었다. 숲 속 옹달샘 곁에서 아주 말간 웃음소리가 들렸다. 산너머에 사는 햇님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샘물을 길러 나온 숲 속 요정들이 저마다 지난 밤 소식을 풀어놓는 중이었다. 한 요정이 갓 결혼한 이웃집 친구의 흉을 잡고 있었다. 듣자하니, 데릴사위.. 우화집 2007.08.18
명작의 길 (6) - 이상원 이상원의 작품세계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의 미학 신항섭(미술평론가) 새 천년이 다가오고 있다. 한 세기가 바뀌는데 그치지 않고 열 세기가 한꺼번에 가고 또 새로운 열 세기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한 세기의 시간개념에 익숙해온 우리의 삶은 갑자기 그 열 배로 증폭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 명작의 길 2007.08.16
나를 울린 시 (33) - 떠도는 자의 노래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명시감상 2007.08.14
나비 꿈 (47) - 온천 온천 溫泉 옥황상제는 천상에 살면서도 항상 살아 있는 생물들로 가득한 지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부러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옥황상제가 지상으로 내려가서 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황상제는 문득 지상에 내려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들었다. 지상의 물이 천상보다 좋다는 사실을 핑계 삼.. 우화집 2007.08.14
미술과 가까이 하기 (2) - 화랑은 개방된 미술품 전시 공간 화랑은 개방된 미술품 전시 공간 섭씨 38도선을 치받던 수은주가 스스로 놀라 숨을 멈추던 몇 년 전 여름 하오, 예전처럼 인사동 전시장을 순회하고 있었다. 인사동 네거리에 인접한 화랑 건물 2층 계단을 오르다가, 그 중간 쯤 서 있던 단발머리 여학생 두 명과 마주쳤다. 그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어 .. 미술과 가까이 하기 2007.08.13
나비 꿈 (46) - 화산 화산 火山 아주 오랜 옛날이었다. 불을 먹고사는 이상한 동물이 있었다. 불을 먹고살기 때문인지 몸은 불덩이로 이루어졌다. 그 이상한 동물은 몸집이 무지무지하게 컸다. 너무 커서 그 이상한 동물의 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말하자면 발가락 하나가 높고 기다란 산맥 하나와 같은 .. 우화집 2007.08.13
나를 울린 시 (32) -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이상희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자연은 인간 삶.. 명시감상 2007.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