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48) - 안개

펜보이 2007. 8. 18. 08:00
 

  안개

 

  첫새벽이었다. 숲 속 옹달샘 곁에서 아주 말간 웃음소리가 들렸다. 산너머에 사는 햇님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샘물을 길러 나온 숲 속 요정들이 저마다 지난 밤 소식을 풀어놓는 중이었다.

  한 요정이 갓 결혼한 이웃집 친구의 흉을 잡고 있었다. 듣자하니, 데릴사위로 들여온 신랑의 나이가 너무 어려 밤이면 신부더러 젖을 달라고 조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신랑은 밤마다 실뜨기 놀이나 하자고 조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옹달샘 가에 모인 요정들은 배꼽을 쥐어짜면서 한마디씩 해대는 것이었다. 옹달샘에는 갑자기 요정들의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크고 소란스러워 늦잠을 자는 산짐승들마저 모두 깨우고 말았다. 요정들이 남을 흉보고 있는 사이에 잠에서 깨어난 해님은 부지런히 산을 넘고 있었다. 요정들은 해님이 고개를 넘어서는 줄도 모르는 채 남 흉보는 재미에 팔려 깔깔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해님이 고개를 넘어서 따뜻한 햇살을 숲에 가득히 뿌리기 시작했다. 해님은 빛을 뿌리다가 그 때까지도 옹달샘 곁에서 수다 떠는 요정들을 보았다. 해님은 냅다 산 고개를 솟구쳐 요정들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놀란 요정들은 서둘러 옹달샘 곁을 떠나려고 했으나 꼼짝없이 해님의 그물에 걸려들고 말았다. 요정들은 해님에게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해님은 짐짓 모르는 체 했다. 해님은 요정들을 샘물가에 잡아둔 채 깨끗이 세수를 하고 나온 나뭇잎들에게 골고루 따뜻한 햇살을 나누어줄 뿐이었다.

  요정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마음 깊이 반성했다. 그 뜨거운 눈물이 옹달샘을 넘치게 했다. 그러자 옹달샘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얀 김은 금세 온 숲을 채우더니 드디어는 해님의 얼굴마저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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