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가까이 하기

미술과 가까이 하기 (2) - 화랑은 개방된 미술품 전시 공간

펜보이 2007. 8. 13. 11:53


화랑은 개방된 미술품 전시 공간

 

 

섭씨 38도선을 치받던 수은주가 스스로 놀라 숨을 멈추던 몇 년 전 여름 하오, 예전처럼 인사동 전시장을 순회하고 있었다. 인사동 네거리에 인접한 화랑 건물 2층 계단을 오르다가, 그 중간 쯤 서 있던 단발머리 여학생 두 명과 마주쳤다. 그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여학생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얘기하고 싶다는 표정을 읽었다. “무슨 일 있어요?” 돌연한 나의 질문에 한 여학생이 친구를 쳐다보며 네가 말하라는 듯 시선을 건넸다. 그러기를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이 역력한 한 여학생이 입을 떼었다. “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저... 그림 보려고 왔는데요... 화랑에 그냥 들어가도 돼요?” 순간, 여태까지 화랑 구경 한 번 못해본 여학생들이군, 싶었다. “그럼요. 여기 말고도 아무 화랑이나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요” 그제서야 두 여학생은 서로를 마주보며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미술과 관련 있는 사람이나 미술애호가들이야 화랑에 드나드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지만, 아직도 미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화랑에 가서 그림 보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화랑이나 미술관에 가는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처럼 유치원시절부터 단체로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이는 순전히 교육의 문제이다. 유치원은 고사하고라도 초중고 시절까지도 화랑 구경 한 번 못해보는 것이 우리 교육의 실정이었다. 학창시절 학습과정의 하나로 미술관 관람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화랑 문턱에서 ‘돈을 내고 들어가야 되는지 어떤지’ 망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술관 및 화랑 관람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고가로 인식되고 있는 그림을 사고파는 화랑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 화랑이란 고가의 미술품을 거래하는 고급상점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도 이른 바 명품관을 들어서는 데는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 않다. 들어갔다가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나오는 것은 점원에게 미안할뿐더러, 한편으로는 욕이나 먹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관으로 인해 고가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화랑을 출입하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화랑이란 그림이나 조각 판화 사진 공예품 따위의 미술품을 전시해 놓고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미술품을 팔고 산다는 점에서는 일반 상품매장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화랑은 미술품 매매를 하면서도 동시에 문화적인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 미술품 전시를 통해 특정의 고객이나 미술애호가는 물론이요, 일반인에게도 자유롭게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술품은 소모성을 지닌 일반 공산품과 구별되는 예술적인 가치를 매개로 하는 상품이다. 이처럼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미술품을 전시하고 매매하는 화랑이지만, 그 가격이 높다는 점 때문에 고급상점으로 인식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화랑은 일반 상점과 달리, 한편으로는 예술품이라는 비상업적인 전시기능을 수행하는 공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미술품 전시를 한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상행위의 자리를 마련한다. 여기에서 화랑의 두 가지 기능을 알 수 있다. 상행위와 더불어 공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화랑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미술품을 사고파는 상행위 이전에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적인 공간으로서의 공공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화랑의 역할 및 기능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이 방면에 상식 및 경험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백화점의 명품점 정도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위의 여학생들처럼 화랑에 드나드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미술품 감상을 생활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우리의 교육현실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요즈음에는 이전과 달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학교에서는 단체관람을 하거나 전시 관람을 과제로 내주는 일이 있어 화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었다. 볼만한 전시회를 지명해주고 작품 감상문을 써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미술관 및 화랑에 관한 상식이 없을지라도 전시현장에 가서 직접 미술품을 감상하고 전시장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미술관이나 화랑이 실생활과 격리된 곳이 아님을 확인하는 산교육인 셈이다.

반면에 지방학생들에게는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를 보는 일은 여전히 먼 나라의 얘기일 따름이다. 지방자치 이후 최근에는 지방에도 복합적인 문화전시공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방 학생들에게도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마저 전혀 없었던 시절 지방에서 학교를 다닌 세대들에게 화랑은 낯설고 생소한 곳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