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운문 (5) - 오방정색을 위하여 오방정색을 위하여 신항섭 아주 먼데서 파란 하늘을 깨는 단발의 포성이 울렸다 잠시 후 노란 포연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포연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지평선을 수직으로 자르며 물밀 듯이 달려오는 한 무리의 검은 기마병 단숨에 천지간을 굴복시키는 거센 야성의 말발굽소리 마침내, 네 섬약한 심.. 서정적인 운문 2007.09.02
서정적인 운문 (4) - 새벽에 새벽에 신항섭 아득한 시간 저편에서 밤을 가로질러온 척후병 다급한 군화소리에 견고한 잠귀를 푼다 급기야, 온 숲을 뒤흔드는 도보군단 무적의 진군을 저지하듯 일제히 기상하는 풀들 그리고, 장렬히 산화하는 이슬의 하강 그 투명한 이성에 깨어 창을 열면 등 굽은 산등성이에 천지간.. 서정적인 운문 2007.08.31
서정적인 운문 (3) - 겨울나무 겨울나무 신항섭 지금은 자정 온 세상이 얼어붙은 깊은 잠 더 이를 데 없는 잠수 지열을 찾아 쭉쭉 내뻗는 탄맥 꿈일법한, 그 힘찬 노동으로 너를 깨운다 너는 단지 네 의식의 체적만큼만 밝히는 야광충 그 차가운 빛을 끄고, 여전히 내 가슴에 서식하는 첫사랑의 미열 그 온기로 너를 덥.. 서정적인 운문 2007.08.27
서정적인 운문 (2) - 개화 개화 신항섭 한 천년 그보다 더 오래 검은 진주 가득 찬 꽃배가 침몰했다더니 오늘, 온 세상 어둠이 집결하는 천길 심연에서 무수히 쏘아 올리는 난쟁이 병정들의 불화살 비등하는 신열 그 열꽃에 떠밀려 내쳐 솟구치는 폭죽소리 꽃 벙그는 소리 서정적인 운문 2007.08.25
서정적인 운문 (1) - 낙화 낙화 신항섭 누적된 슬픔이 제풀에 허물어지고 있다 지켜보는 이 없다는 외로움의 가중치 천근 무게보다 더 큰 상심 강물이라도 타고 한 천년 세월 떠돌다가 불현듯, 첫사랑보다 뜨거운 석양에 데어 네 손톱 끝 상처로 남고 싶다 서정적인 운문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