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46) - 나의 애독서

펜보이 2010. 4. 10. 07:51

나의 애독서

 

킴바라 세이고 "동양의 마음과 그림"

 

신항섭(미술평론가)

 

미술은 어느 틈엔가 우리들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의 삶 도처에서 미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눈으로 인지되는 인위적인 물상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미술과 연관되어 있다. 하다못해 볼펜 한 자루까지도 미적인 감각이 반영되어 있다. 실용적인 가치가 우선하던 시대에서 미적인 가치가 우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삶의 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두되는 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이다. 미술에 대한 재인식은 인간사회가 이성보다 감성의 힘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기에 미술의 자체의 질적인 향상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창작의 주체인 미술가들의 미술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 및 심도 깊은 사유의 전개가 필요하다. 새삼 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각예술인 미술은 조형적인 탐색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탐미적인 시각을 유도하는 것은 심미의 문제이다. 미추를 분별하여 그 가치를 조망하고 관조하는 것은 미학적인 요구인 것이다.

킴바라 세이고 (金原省吾)의 <동양의 마음과 그림>은 이미 동양미학의 고전에 속하는 저술이다. 적어도 동양미학에 대한 원론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무엇보다도 동양의 미 그 본질을 향한 치밀한 사유의 전개를 통해 선명한 시각적인 이해의 디딤돌을 놓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처럼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이성의 유희를 즐긴 이가 과연 있었을까 싶으리만치 그가 도달한 미의 심연은 깊고도 넓다.

동서양의 미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차이를 명쾌하게 밝히면서도 궁극적으로 동양의 미, 그 본질을 명료하게 갈파한다. 비교적 단문형식의 주관적인 서술방식도 그러하거니와 중국 및 일본의 명화들을 탐미적인 시각으로 분석해낸 미적 안목과 사유의 전개는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그의 사유의 전개방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 자칫 중간을 건너뛰어서는 이해의 줄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 만큼 섬세하고 치열하며 논리적인 사유의 전개를 특징으로 한다. 덧붙여 감수성이 풍부한 문체는 완고한 미학을 한결 나긋나긋한 이미지로 그려놓는다.

이 책은 ‘동양의 마음’과 ‘동양의 미’를 전편에 담고, ‘동양의 그림’을 후편에 놓았는데, 전편에서는 ‘동양의 미’ 그 근원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를 도모했고, 후편에서는 중국화의 맹아기를 비롯 당화와 송원화를 중심으로 하여 각 시대의 화론을 이해하기 쉽게 펼쳐놓는다. 전편에서는 동양의 미는 마음의 움직임으로부터 발단하여 실제의 창작으로 이행함으로써 결과로서의 그림이 완성되는 전후의 사정을 손금 보듯 논리정연하게 서술한다. 즉 한 폭의 수묵화가 품고 있는 내의의 함축과 형태의 압축에 대한 필연성이 의문의 여지없이 풀려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논지의 전개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본문 가운데 한 부분을 인용한다.

“색은 운동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색은 뻗어 가면 선으로 되지 않고 면으로 된다. 색은 편편하고 또한 넓게 칠해질수록 색으로서의 순수한 성질을 뚜렷이 한다. 그러므로 선은 색으로 되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면으로 되어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색도 순수하면 그 색은 진출성을 가져온다. 진출성이란 색이 싱싱하여, 사람에게 작용을 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색이 신선하고 투명하고 넓게 칠해질수록 진출성을 성하게 한다.”

 

<세계일보 2010년4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