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47) - 중국미술의 힘과 미래 가치

펜보이 2010. 5. 9. 14:26

미술시평

 

중국미술의 힘과 미래 가치

 

신항섭(미술평론가)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 늘 이와 같은 의문에 부딪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만큼 긴밀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국문화의 원류로서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6.25 이후 북한이 가로막고 있어 육로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을지언정, 발달한 항공 및 해상운동 수단은 오히려 양국 사이의 거리를 이전보다 한층 가깝게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공간 및 시간적인 제약은 거의 느낄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은 개방이후 전 세계가 놀랄 만큼 급진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모두 면에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새삼 중화사상, 즉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랜 사상적인 뿌리를 바탕으로 세계질서에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근간으로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물론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도 해결해야 될 문제가 산적해 있어, 반드시 장밋빛 희망만을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중국이 지니고 있는 국가적인 잠재력은 어느새 절대강자의 위치에 있는 미국이 두려워할 정도가 됐다.

미술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그렇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중국미술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아직 주류라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중국미술을 논외하고서는 세계미술시장의 현재 및 미래를 얘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닥치기 이전만 하더라도 미술품 거래 규모는 오히려 미국시장을 앞지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기간에 이처럼 중국미술이 세계미술시장에서 크게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계미술계가 중국현대미술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은 미술시장의 잠재적인 가치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세계미술계가 경험하지 못한 특수한 상황에 대한 관심이었다. 다시 말해 오랜 사회주의 국가이념에 충실해온 중국이 경제성장정책에 따라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야기되는, 급변하는 사회상이 현대미술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한 것이다. 서방에서는 이런 상황을 전혀 경험한 일이 없기에 반색을 하며 반기게 된 것이다. 중국의 변혁기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상이야말로 명민한 예술가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제재가 되었고 서방에서는 이에 환호를 보내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개방 이후 일부 제한적이기는 해도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는 현대미술가들은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5천년에 이르는 문화적인 전통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직접 부딪치고 느끼는 사회상을 은유적이고 해학적이며 풍자적인 문체로 표현했다. 거기에 담긴 숨겨진 메시지를 재빨리 읽어낸 것은 서양의 전문가들이었다. 서양의 전문가들은 거대한 중국에 자본주의 물결이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현대작가들의 작품에 그대로 압축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20세기를 끝으로 동력을 상실한 현대미술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현대회화는 그야말로 엘도라도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10년간 침체기에 빠져 있던 세계미술시장은 중국현대미술의 출현으로 한 차례 비약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한마디로 예민한 전문가들과 발 빠른 콜렉터들은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중국현대미술의 미래가치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실제로 옥션을 중심으로 한 세계미술시장에서 중국현대미술은 기대이상으로 훌륭히 상품적인 가치를 과시했다. 상업화랑은 물론이요, 명망이 높은 미술관에서 다투어 중국현대미술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콜렉터들 역시 새로운 미술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억이 넘는 거대한 인구와 외자유치 및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축적된 달러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호주머지를 두툼하게 만들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1990년대 초중반과 2000년대 초중반에 들이닥친 미술품 수집 붐은 가히 광풍과도 같았다. 경매를 중심으로 거대한 미술시장이 활짝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사이에 중국의 현대미술은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함과 동시에 세계미술시장의 주류로 급속히 편입되었다. 이렇게 되자 세계 각지의 유수의 미술관과 상업화랑들이 다투어 북경에 진출했다. 국제적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미술전문가들은 물론이요, 개인적인 콜렉터들조차 북경을 모르고서는 현대미술을 논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북경뿐만 아니라 미술학원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잠재적인 스타를 발굴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미술을 중심으로 호황을 누리던 세계미술시장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미국 발 국제금융위기에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만 것이다. 도대체 그 끝이 어디일까, 기대와 불안으로 지켜볼 만큼 미술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미술품 경매 또한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중국현대미술가 작품 한 점에 수십만 달러는 고사하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놀라운 가격으로 팔리는 등 연이어 기록을 갱신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중국현대미술이 미국 팝아트의 인기를 능가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화에서도 한 편으로는 수직상승하는 중국현대미술품 가격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하는 미술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현대미술이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을 반영함으로써 당연히 그와 같은 경험이 없는 다른 나라 현대미술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고, 그러한 독특한 경험이 만들어낸 미술작품에서 남다른 시장가치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냉정하게 한 번쯤은 예술적인 가치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누구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수직상승하는 에스컬레이터 타는 재미에 빠져들다가 그만 순식간에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지고만 것이다.

지금 중국현대미술품의 가격은 그 하한선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급락하고 있다. 이는 중국현대미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지라도 단기급등에 따른 후유증은 예상보다 심각한 지경에 빠졌다. 더 이상 경매결과를 지켜 볼 필요도 없다. 이른바 중국현대미술을 이끌어온 4왕의 작품조차도 경매에서 유찰되기 일쑤여서 경매가격 자체에 대한 논의조차 무의미하게 돼버린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중국현대미술의 가치하락을 반드시 세계경제위 탓이라고만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일부 눈치 빠른 콜렉터들은 중국현대미술이 자기복제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무차별 쏟아지는 중국미술시장을 바라보면서 이미 식상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미술이 자기복제를 시작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현대미술은 적어도 부단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다. 현재 중국미술에는 그런 동력이 부족하다. 이는 현대미술의 생리에 대한 경험부족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중국현대미술은 과연 미술시장에서 어떻게 될까. 물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국제미술시장은 차치하고라도 국내시장에 대한 기대는 간단히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5천년의 유구한 문화가 생산해낸 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미술품에 대한 중국인들의 욕구 및 선호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가 되고 있기에 그렇다. 실제로 중국현대미술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서화 및 도자기 등 전통미술품은 여전히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최근 경매 낙찰률이 높아지고 또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이들 전통미술품의 시장가치는 무한하다고 말할 정도이다. 수요층이 워낙 많고 또 축적된 자금이 달리 갈 데가 없으므로 전통미술품의 가치 상승은 한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미술시장을 보면서 한국작가들은 그저 남의 일보듯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미술시장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면 시장이 빈약한 한국작가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급등한 중국작가들의 작품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문제로 인해 중국콜렉터들이 아직 적극적으로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시장에서 그 상품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일부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중국의 콜렉터들에게도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 일부 중국콜렉터들은 좁은 시야를 벗어나 국제적인 감각 및 안목을 갖추어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미술신문 제437호(2010년 4월10)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