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43) - 미협 개혁은 미술대전부터

펜보이 2010. 1. 20. 21:17

미술신문 칼럼

 

미협 개혁은 미술대전부터

 

신항섭(미술평론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가 끝났으니 미술계도 이제 좀 조용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 선거는 이전에 비해 그래도 좀 덜 시끄러웠다는 데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을 듯싶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정치권과 다를 바 없는 혼탁한 금권선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선거운동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한편에서는 냉소적인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누가 당선되든 그 나물이 그 밥이지 않겠느냐는 자조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내적인 차가운 시각을 의식한 때문인지 이번 선거는 후보자들이 많이 자제하는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미협 선거를 지켜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던 것은 미술대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 탓이다. 무엇보다도 미술대전 심사와 관련해 금품수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구심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 미술대전 공모 출품작이 해마다 줄어드는 현상이야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불신감의 바로메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봄 미술대전 총 응모작 숫자가 500점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가를 말해준다.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출품해도 심사위원과 인적 관계가 없으면 입선조차 힘들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그러니 애써 출품해봤자 결과는 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선에 뽑혀도 좋은 우수한 작품들이 입선에도 들지 못한 채 밀려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는, 심사에 참여한 작가들의 얘기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미술대전에서 특선작보다 나은 입선작이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일들이 공연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바깥의 소문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미술대전에 대한 불신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불신감은 미술대전을 주최하는 미협의 잘못된 운영방식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현 미술대전은 물론이려니와 과거 국전에서도 부정심사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미술대전이 작가 등용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전 심사위원은 대다수가 미술대학이나 중고교 미술반 선생들이었기에 제자나 후배를 챙기는 일쯤은 예사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런 때에도 일부 작가들은 금품을 싸들고 심사위원을 찾아다녔다고도 한다. 단적인 예로 국전심사에 정실이 개입됐다며 낙선한 작가들이 ‘낙선전’을 연 일이 있듯이 국전시절에도 여전히 혼탁했음을 말해준다.

이런 정황인데도 해마다 수많은 작가들이 국전에 출품했다. 개인전 경력 한 줄 없어도 미술대전 입상 경력이면 작가로 대우해주는 사회적인 인식이 국전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준 것이다.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매년 한 차례 열리는 국전에 출품하는 것을 통과의례로 받아들였다. 최소한 입선작이라도 내야 한다는 열망으로 한 해 동안 심혈을 기울여 창작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모전 기간이 되면 지방작가들도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작품을 들쳐 멘 채 서울로 향하곤 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100호 크기의 대작을 소달구지나 심지어는 지게에 지고 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런 열정이 있었던 것은 다소간 부정심사가 있다고 할지언정 대체로 우수한 작품은 입상대열에 끼어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전에서 민전으로 넘어온 이래 추대형식에서 선거방식으로 바뀌더니 어느 틈엔가 금권선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로 과열된 양상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선거가 되면서 미술대전 운영이 점차 파행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관전이었던 국전이 민전으로 넘어오게 된 것도 부정심사 문제가 발단이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국전이나 미술대전은 부정심사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일테면 원죄인지 모른다.

미술대전의 심사와 관련한 비리는 이른 바 정실사회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와 관련된 문제일 수 있다. 다시 말해 학연과 지연 그리고 혈연으로 얽히고설킨 사회구조가 부정심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근래의 미술대전에서 벌어지는 심사 비리 가운데 금품수수는 하나의 관행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이다. 다시 말해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입상하기 위해서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입선은 얼마, 특선은 얼마 하는 식으로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지만 미술대전 부정심사와 관련해 검찰조사가 이루어지고 또 금품수수 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법원판결로 보아 단순한 헛소문만이 아니라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근래 미술대전에 대한 불신의 벽은 더욱 두터워져 고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이미 국전시절부터 그래왔지만 대다수의 미술인들은 미술대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존속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미술인들이 외면하는 미술대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공모전 출품작 숫자가 말해주듯이 심사위원과 이런저런 연고가 있지 않는 한 결과는 정해져 있지 않느냐며 아예 출품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미술대전에 대한 미술인들의 인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술대전 심사결과에 대해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매스컴의 냉대는 바로 사회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돌이켜 보면 국전이나 미술대전 초기만 하더라도 심사결과가 발표되는 날이면 각 매스컴에서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고, 대상 수상자는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매스컴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음으로써 일거에 유명인사가 되는 특혜를 누렸다. 그야말로 한 방에 끝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상을 받지는 못했을망정 그래도 일간지에 입상자 명단이 발표됨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영광스러운 기회였다. 일간지에서 입상자 명단을 먼저 본 주변 지인들로부터 입상축하 전화를 받고 입상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 그런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매스컴에서 미술대전 소식이 사라진지 오래됐다. 대상 수상자 인터뷰는커녕, 입상자 명단도 보도되지 않는다. 아니 아예 단신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미술대전에 출품하는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미술인들조차 언제 미술대전이 열리는지 관심이 없다. 미술대전은 ‘저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것이다. 이제는 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고 해도 미술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술대전을 바라보는 내외의 시선이 이처럼 싸늘해졌다.

그러고 보면 미술대전 폐지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도 싶다. 공청회라도 열어 문제점 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하든지 아니면 미술인들 전체의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해서 결단내야 할 일이 아닌지 모른다. 현재로서는 미술대전이 존속해야 할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번 이사장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후보자들은 공정한 미술대전 운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공약을 실천하리라고 믿는 유권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속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이 바뀌었으니 한 가닥 기대마저 저버릴 일은 아니다. 공약대로 미술대전 명예회복을 위해 획기적인 운영개선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미술대전과 미협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심사방법만 개선해도 부정한 심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누도 공정한 심사방식으로 개선하려 들지 않았다.

선거에서 승리한 후에는 논공행상이 따르게 마련이다. 여기서부터 냉정해지지 않으면 미술대전에 대한 개선의지도 헛일이 되고 만다. 선거 공적으로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을 시키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미술대전 운영위원이나 심사위원 위촉을 논공행상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근래 미술대전과 관련한 심사 비리는 모두 논공행상에서 비롯되고 있기에 그렇다.

이사장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축하인사는커녕 아픈 곳을 찌르기만 해서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미협 새 집행부는 환골탈태하여 실추한 미술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미술신문 제433호(2010년 1월1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