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42) - 한국미술계는 지금 황금어장

펜보이 2010. 1. 12. 19:45

한국미술계는 지금 황금어장

 

신항섭(미술평론가)

 

중국미술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유증인가, 아니면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인가, 미술시장이 심각한 침체의 국면에 빠져들었다. 그러기 전에 국내미술시장의 침체는 옥션의 단기급등에 따른 예측된 상황이었다. 상업화랑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미술시장에 옥션이 끼어들면서 기존 시장질서가 무너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단기투자자본이 미술품경매에 개입함으로써 투기형태의 시장이 되었고, 수순대로 거품이 빠지고만 것이다.

한국미술계는 시장의 논리에 지배되는 경향이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가기준 또한 시장상황에 따르고 있다. 옥션에서 고가에 낙찰되면 인기작가가 되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블루칩 작가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품의 개별적인 형식이나 예술성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단지 얼마나 높은 가격에 얼마나 잘 팔리느냐가 평가기준이 될 뿐이다. 이처럼 옥션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시장은 미술계의 흐름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독창성 및 예술성 그리고 개별적인 형식으로 평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장반응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옥션에 출품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더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미술관에서 초대전이 열리고, 지명도 높은 화랑이나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작품이 팔리면 하루아침에 인기작가로 부상한다. 매스컴은 이러한 소식을 경쟁적으로 전달하고 일부 컬렉터들은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렇듯이 국내 미술의 흐름은 미술시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시장논리가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성을 중심으로 하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통용되지 않는다.

경제의 흐름과 상관없이 예술성 높은 작품을 찾아내고 또 그를 즐기는 방식의 미술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장논리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미술관 및 화랑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냉철한 비평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그리해야만 박수근이나 이중섭과 같이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미술가가 태어날 수 있다. 아무리 작품가격이 높은 작가라고 할지라도 미술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역할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미술계는 유행하는 미술양식에 집중하는 획일성에서 탈피하여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신예들을 포함 30-40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실험적인 다양한 미술로 인해 과거와 전혀 다른 풍부한 조형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젊은 세대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발한 조형언어 및 문법으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전개한다. 이들의 겁 없는 도전을 통해 비로소 한국미술계는 진정한 미술의 부흥을 도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미술시장이 침체에 빠져든 이 시기야말로 작가들에게는 미술관이나 화랑을 기웃대지 않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 모른다. 또한 창의력과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미래의 박수근 이중섭을 찾아나서는 혜안의 콜렉터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이 아닐까싶다.

 

(세계일보 2010년 1월12일자 문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