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0년경, 캔버스에 템페라, 66x81cm, 밀라노 브레라미술관
명작명품 세계순례 - 안드레아 만테냐
“운명한 그리스도”
회화가 조각의 조형개념을 받아들이면 어떠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한 화가가 있다. 초기 르네상스 북이탈리아 파도바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원근법과 단축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사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는 조각의 입체적인 이미지를 살리는 독특한 공간해석을 통해 미술사의 지평을 넓힌다.
이처럼 회화에 조각의 조형적인 표현방식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 도나텔로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타고난 재능과 명민함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소묘에 숙달함으로써 사물의 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그로서는 조각에 대한 이해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그에게 도나텔로는 實像(실상)에 접근하는 사실적인 표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후일 그가 조소적인 平靜(평정) 및 장중함과 더불어 엄숙함 그리고 날카롭고 명확한 형태 감각의 개별적인 조형성을 확립할 수 있었던 데는 조각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이 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인체 묘사에서 해부학적인 구성의 묘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조소의 조형감각과 연관성을 지닌다.
비첸짜가 고향인 그는 파도바의 스콰르치오네 문하에서 그림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이때 작가적인 기초의 완성과 더불어 인문주의에 대한 식견을 넓히게 된다. 인문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가 유난히 원근법과 단축법에 집착하였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작가적인 태도는 빈틈없는 원근법의 적용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배경의 세부까지도 치밀하게 묘사하는 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울러 고대미술에도 해박했던 그는 웅대한 스케일의 고대풍의 역사화와 종교화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전개한다.
특히 인문학적인 지식을 활용하는데 적극적이었던 그는 원근법과 더불어 공간환각이라는 일루전에 의한 시각적인 효과에 몰두했다. 이처럼 새로운 표현기법에 대한 관심은 1474년 만토바의 카스텔로 디 코르테 내부 벽화에 그대로 나타나, 일루전에 의한 열린 이미지의 천장화라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 벽화에는 또한 미술사상 처음으로 군상 초상이라는 형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가 성공적인 길을 걷게 된 데는 스스로의 재능뿐만 아니라 베네치아파의 초석을 쌓은 야코포 벨리니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처남인 지오반니 벨리니 등과 함께 화가의 가계를 형성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편 그는 이탈리아 초기 동판화사에 일획을 긋는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운명한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상식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유체를 화면 중심에 수직으로 배치하고 시점을 발바닥 아래에 두는 특이한 구도가 그러하거니와 마치 대리석 조각상을 보는 듯 차갑고도 명료하게 부각시킨 볼륨과 명암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의식의 대전환을 통해 도달한 표현이다. 그런가하면 캔버스 천의 조직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얇게 처리한 채색기법 또한 발상의 전환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시각의 음영기법에 의해 의식적으로 얇게 칠해진 물감은 명확한 입체감을 암시한다. 여기에다 원근법과 단축법을 적용함으로써 폭이 좁은 화면에 전신을 압축시킨 구도는 그만의 조형적인 해석이다. 화면 귀퉁이에 노쇠한 성모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그러면서도 장중함과 엄숙함을 잃지 않는 작가의 예리한 시각은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결코 잊히지 않을 감동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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