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감상

명화감상 (7) - 도메니키노

펜보이 2008. 4. 11. 12:14
 

                       

                         1614년, 캔버스에 유채, 419x256cm, 로마 바티칸미술관

 

  명작명품 세계순례 - 도메니키노

 

 “성 히에로니무스의 마지막성체배수” 

 

  이탈리아 볼로냐파의 성립은 카라치 일가에 의해 설립된 아카데미와 무관하지 않다.  사설미술학원이었지만 아카데미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훌륭한 작가를 많이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데이 인카미나티가 이론에 너무 치우친다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역사와 기초적인 기량 숙달 중심의 교육방식은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재능을 확대시켜 주는데 기여함으로써 구이도 레니, 도메니코 등의 유명화가를 배출, 볼로냐파라는 새로운 학파 형성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볼로냐파의 실질적인 산파인 로도비코 카라치의 사촌인 도메니키노(Domenichino,1581-1641)는 카라치가의 명예를 훌륭히 잇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순수 풍경화의 효시’라는 명성에 빛나고 있다. 

  볼로냐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칼바르트에게 배웠으나 나중에는 로도비코 카라치의 문하에 들어가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사실적인 묘사기법을 완성하게 된다.  특히 고전주의학의 이론가였던 아긋키와 친함으로써 고전 회화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이처럼 한 작가로서의 자립 조건을 완비한 그는 1602년 로마로 진출, 보르게세 궁정과 파르네세 궁정 벽화 제작에 참여한다.  여기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는 교황청 궁정화가의 영예를 누리게 된다.  이와 함께 나폴리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그의 명성은 당대의 이탈리아를 풍미한다.

  하지만 그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신념하는 길을 걸었다.  당시 로마에는 한창 정열적인 바로크 화풍이 지배하는 경향이었는데도 이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단정한 고전적인 이미지의 견고한 구성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는 고전적인 엄격함과 함께 명쾌한 건축적인 구성이 일품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는데, 이는 파르마파의 대화가 코레지오를 깊이 연구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완벽한 소묘를 기초로 하여 선명한 명암이라든가,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생활감정 등의 현실적인 접근방식은 코레지오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런가 하면 실제 묘사에 치중함으로써 정감이 부족할뿐더러 형식에 집착하는 듯해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반면에 그는 현실적인 풍경을 배경에 도입함으로써 푸생, 클로드 로랭 등 풍경화가의 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더불어 해부학에 근거한 완벽한 인체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는 그의 화풍은 19세기까지 아카데미즘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마지막 성체배령”은 고전적인 인물화의 모범답안을 보는 듯한 작품이다.  지금 바로 눈앞의 정경처럼 생생히 묘사한 치밀한 사실적인 표현은 물론 입체감을 강조하는 뚜렷한 명암,  실내와 옥외 풍경을 대비시키는 실제적인 공간구성 등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따라서 바티칸미술관에 있는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에 비견될 정도이다.  성체배령은 가톨릭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떡과 포도주 속에 존재한다고 믿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는 성찬식을 의미한다.  죽음을 앞에 둔 성 히에로니무스의  해부학에 기초한 인체 묘사는 그가 얼마나 교과서적인 표현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상단의 아기천사들의 모습에 부여되는 입체감과 문밖의 현실적인 풍경 또한 사실성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화면을 양분하여 하단에 인물을 배치, 구도의 안정감을 가져옴으로써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장중하게 이끌고 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