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33) - 여성미술인시대가 도래하는가?

펜보이 2008. 2. 24. 21:17
 


예술산책 - 미술

 

여성미술인시대가 도래하는가?

 

신항섭(미술평론가)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세상의 흐름, 또는 변화가 너무 빨라 자칫 한눈 팔기라도 하면 금세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의 홍수가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보에 어두우면 빠른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외면할 수 없다. 세상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주도하는 변화의 중심에는 속도가 존재한다. 정보의 전달속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그러나 속도의 문제와 상관없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변화는 의외로 많다.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얼른 감지할 수 없을 따름이지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일들이 우리의 현실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인 변화 또한 인터넷의 직간접적인 영향 탓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매체라는 특성에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생활양식은 물론이려니와 행동양식, 그리고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정보는 세상을 완전히 열린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기에 과거의 습속이나 의식에 갇혀 있다가는 이 빠른 세상의 변화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최근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여성미술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그에 따른 화단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그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성미술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일반인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실제로 미술전시의 경우 이미 남녀비율이 남성 우위에서 여성 우위로 바뀐 지 오래이다. 여성 전시회가 70% 정도에 이르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여성미술인의 증가에는 어떤 사회적인 배경이 있는 것일까.

여성미술인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 이면에는 작품활동만으로는 생계가 어렵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전에 미술인의 생계수단으로는 대학 및 중고등학교 교사와 미술학원 운영이나 언론 및 백화점의 문화센터 강사 따위가 중심을 이루었다. 물론 화실에서 이루어지는 개인교습도 중요 수입원의 하나였다. 그런데 대학의 교육제도 개편과 국가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미술인의 수입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대학입시 평준화에 따른 입시제도의 개편으로 인해 사설미술학원 운영이 점차 어려워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술대학의 증가와 그에 따른 미술인의 자연스러운 증가와 더불어 문화센터를 통해 창작활동의 기반을 갖춘 새로운 그룹의 미술인이 대거 화단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개인교습 형태의 수입원에도 경쟁이 심해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되자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남성들에게는 아무런 매력도 없는 직업이 되고 말았다. 미술을 전공해서는 먹고살기 힘들게 되었다는 현실적인 이해로 인해 남성들의 미술대학 입학률이 급감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여성들로서는 미술을 전공하더라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데다가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는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로 인해 미술전공자가 오히려 증가하게 되었다. 현재 미술대학 신입생 중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미술계는 머지 않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여성들이 활동이 남성보다 앞설 것으로 전망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아직까지는 여성들의 화단활동의 비중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작가의 전시회의 숫자가 남성을 앞질렀다는 현실도 그렇거니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숫자 또한 점차 증가하는 추세로 보아 20-30년 후쯤에는 그야말로 여성미술인의 시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변화를 두고 일부 화단 내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양적인 팽창에 비해 질적인 수준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특히 개인화실이나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해서 각종 군소 공모전이나 혹은 개인전을 통해 데뷔하는 여성미술인의 경우 작품의 수준이 낮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문화센터는 그 특성상 사회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수강하는 여성들의 경우 전공자는 재교육의 기회로 삼는다. 그리고 비전공자는 미술의 기초를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받아들인다. 개인화실의 경우에는 개인교습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도제교육의 형태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튼 이러한 교육과정을 거쳐 창작활동과 더불어 화단활동을 하게 되는데 기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독립적인 작가가 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물론 화단 내에서 지적하듯이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문제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회교육을 통해 화단에 데뷔하는 여성들 중에서는 그 실력을 간과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히려 미술대학에서 4년을 전공하고 첫 작품전을 여는 신예들보다도 실력이 나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들이 전공을 하지 않았거나 또는 사회교육을 통해 데뷔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폄훼할 이유는 없다.

어느 분야나 급격한 변화 속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잠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만을 들추어내는 것도 좋은 해결방법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좋은 점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다. 어느 한 곳에 정체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이기 마련이다. 그 변화를 긍정적인 쪽으로 유도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여성미술인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세상의 흐름이 그렇게 간다면 누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능력사회이다. 여성 남성의 문제를 떠나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로 진행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들의 실력은 이미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스포츠 분야의 경우 세계무대에서 맹렬히 활약하는 여성들의 존재를 보면 한국여성 전체의 미래를 전망하기 어렵지 않다. 이야말로 누구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여성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세계, 2005년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