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30) - 떠오르는 중국미술

펜보이 2008. 1. 5. 22:17
 

  예술산책 - 미술

 

  떠오르는 중국미술의 미래

 

  신항섭(미술평론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미술계에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의 진원지는 중국이다. 중국미술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변방은커녕 어느새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부를 차지하기 시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딜렘머에 빠진 현대미술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관심을 모으고 있을 정도가 됐다. 그렇다. 중국미술은 이제 세계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 중요 비엔날레는 물론이려니와 유수의 미술관들, 미술시장인 각 지역 주요 아트페어, 그리고 유명화랑들까지 다투듯 중국미술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미술이 세계현대미술현장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죽의 장막을 걷고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 안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유럽이 장악해온 세계미술계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중국미술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중국미술의 강점은 세계미술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중국적인 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기초가 견실한 작가층이 두텁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중국미술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미국이나 서구유럽에서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추상표현주의가 출현한 이후 20세기 후반 세계 현대미술을 주도해온 미국은 더 이상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을 진보 발전의 개념에 적용시켜 새로움만을 추구해온 당연한 결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기 시작한 현대미술은 하이테크미술에까지 이른 이후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하이테크미술이 시들해지자 신체작업 및 사진작업이 유행하는가 싶더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마저도 맥을 못 추고 있다. 물론 미국흉내내기에 골몰하는 일부 현대적인 작가들은 여전히 미국을 쳐다보고 뉴욕을 기웃거리지만 별다른 응답이 없다. 새로운 표현, 새로운 방법, 새로운 매체,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새로운 작가가 출현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틈을 타 중국미술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21세기 현대미술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예상하는 근거는 단순히 오랜 전통문화와 두터운 작가층만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이 세계미술계의 새로운 관심사는 어쩌면 거대시장으로서의 잠재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세계현대미술을 주도해온 미국이 더 이상 새로운 미학의 생산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이 융성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의 진흥과 경제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중국의 잠재력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 이미 6천억 달러를 넘어선 국제무역 거래액수는 세계 6위의 무역대국으로 만들어놓았다. 2030년경에는 국민총생산이 미국과 대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리라고 말한다. 이는 근거 없는 예측이 아니다. 광대한 국토와 자원 그리고 넘치는 인적자원에다가 독자적인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성장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질성장률이 9%대에 달할 정도가 됐다. 이 정도의 경제력이면 문화예술이 꽃피울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국미술을 희망적으로 보는 것은 미국 및 서구유럽이 미술을 진보 발전의 개념으로 보고 새로운 표현 및 매체를 이용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을 때 중국은 충실한 아카데미즘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전념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이야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당연한 일이니, 그에 대한 예술적인 평가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교육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위해 필수적인 아카데미 교육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미국이나 서구유럽에서 유망한 젊은 작가들이 출현하지 않고 있는 현상은 아카데미교육을 외면해온 결과인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미술의 잠재력은 바로 철저한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기초가 견실한 작가들로 무장되어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다가 거대 미술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미 경매제도가 크게 활성화되어 어느덧 정착해 가는 단계에 있다. 미술품 거래의 70-80%가 경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중국의 미술품경매는 북경이나 상해뿐만 아니라, 각 성의 성도는 물론이요, 그 밖의 대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경매가 성행하고 있다. 중국미술품의 경매 열기를 반영하듯 최근 홍콩의 한 경매에서는 청나라 옹정시대의 도자기 한 점이 무려 32억원에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중국미술품에 대한 시장 잠재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의 하나이다.

  지난 해 빠리에서 열린 1백년 전통의 살롱도톤느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스페인 등 7개국의 특별초대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한국부스 옆을 차지한 중국부스는 단연 최고의 인기였다. 8명의 젊은 구상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중국부스가 그처럼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국작가들의 작품은 기존의 서구작가들이 해온 구상작업과는 어딘가 달랐고 그 수준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왜 새삼 구상조각이 인기였을까. 그 답은 바로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서구적인 조형미가 아닌, 중국적인 조형미를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중국 구상조각은 한시대의 토용을 비롯하여 진시황릉의 토용 그리고 불교조각, 청동기물 따위에서 만들어진 중국적인 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료는 일반적인 나무 철 청동 따위로 새로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의 눈에 익지 않은 새로운 형태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의 오랜 문화적인 전통과 그를 새롭게 해석해내는 견실한 기초를 닦은 유망한 젊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이야말로 중국미술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렇다. 중국문화는 난관에 부딪친 세계현대미술에는 다시없는 비옥한 땅이다. 그런데다가 미술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의식 및 잠재력이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중국미술이 세계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이 떠오르고 있다. 황사가 동북아시아를 덮고 하와이를 지나 미국본토에 상륙하듯이 세계현대미술은 지금 중국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술세계" 200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