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31) - 아시아평화미술전 심포지움 - 동북아시아 미학에 대하여

펜보이 2008. 1. 25. 10:04
 

  아시아평화미술전 심포지움 2 - 동북아시아 미학에 대하여

 

  신항섭(미술평론가)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가장 큰 특징은 漢字(한자)라는 공통의 문자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유교 및 불교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점이다.  한자 역사는 갑골문자를 그 기원으로 한다면 3천년이 넘는다.  더구나 3천년 전에 만들어진 글자가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경우는 한자가 유일하다.  또 하나 동북아시아는 유교 불교 도교라는 공통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물론 현대에 와서 도교는 거의 자취를 감춘 형편이지만 역사적으로 세 가지 종교를 숭상함으로써 그 정신적인 뿌리에서 유사성이 강하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인의 정신세계 및 삶의 정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  인간의 사고력은 문자언어를 통해 확장되기 마련이고, 정서는 종교 또는 민속신앙 그리고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북아시아 삼국 즉, 중국 한국 일본의 예술은 같은 뿌리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열매를 맺는 형국이다.  같은 종교는 정신적인 뿌리가 하나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자연환경은 생활감정 따위의 정서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동양, 그 중에서도 동북아시아의 예술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 및 특징은 유교 불교 도교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동양미술은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나머지 그 속에 담긴 품격 또는 격조를 이상미로 설정함으로써 조형적인 완성을 이상미로 여기는 서양미술과의 대칭점에 선다.  동양미술에서 말하는 품격이나 격조는 기술의 완성보다는 그를 만든 작가의 인격적인 완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러기에 작자의 인격이 고매하면 작품 또한 저절로 고상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성현의 가르침 즉, 禮(예)에 철저한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중국 한국 일본의 예술이 공통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창조한 것은 바로 자연환경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이란 삶의 기본조건을 의미한다.  동양에서 자연은 적응의 대상이고 순응의 대상이다.  반면에 서양에서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다.  그러기에 동양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고 거기에 동화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삶은 순리에 따르는 일이다.  아무리 혹독한 자연환경일지라도 거기에 적응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도리를 찾았다.  바꾸어 말해 환경이 육체를 만들고 성정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性情(성정) 즉, 성질과 감정은 자연풍광 및 그로부터 나오는 먹을거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은 드넓은 땅과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성현의 道理(도리)를 가르치고 그를 따르게 하는 일이 필요했다.  중국에서 위대한 사상 및 종교가 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광활한 땅이 말해주듯이 변화무쌍한 자연환경 조건에 사는 서로 다른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끌기 위해서는 성현의 도리만이 그 해결책이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순응하면서 사는 가운데 성현의 도리를 체득함으로써 현실적인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었다.  예술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과정에서 발하는 영육의 꽃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성현의 도리를 통해 익힌 고매한 인격에다 거기에 순응하는 육체의 기술이 고도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예술은 영과 육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과 인접한 한국은 빈번한 교류를 통해 중국의 문물이 소개되었고, 공자를 비롯한 제성현의 가르침 또한 자연스러운 경로를 통해 받아들였다.  한자가 들어온 것은 위만조선 무렵부터이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형성된 6-7세기경에는 이미 중국과의 외교문서가 작성될 정도였다.  중국에 인접해 있는 데다가 중국과의 밀접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한반도 고대 국가들이 앞선 중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앞선 문화란 발생지로부터 그 주변으로 점차 파급 확산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의 제 양식은 대부분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과 함께 한반도라는 특수한 자연환경과 그로부터 형성된 한국인만의 성정이 보태지면서 점차 다른 양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널리 알려진 고려불화 고려청자 조선백자 따위의 미술품이 중국의 그것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흔히 한반도 즉 한국의 전통미술을 ‘미완의 미술’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완’이란 하나의 독립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미술에서 중요시하는 기술적인 완성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미치지 못하였다’는 의미 또한 형태적인 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결과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기교적인 완성을 회피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미술의 한 특징은 한국인의 성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사계절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하고 비교적 건조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땅이 비옥하여 갖가지 곡식 및 실과 그리고 각종 채소류가 잘 자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는 예로부터 농경사회였다.  농경사회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절의 변화가 빠른 곳에서는 파종과 수확의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매사에 긴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든지 기민하게 대응해야만 했다.  어쩌면 한국인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성급함도 한반도의 기후조건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빠른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의 여유 또는 심정적인 여유를 가질 수 없는데 기인하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무슨 일이든지 완벽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한국미술은 기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예술적인 본질, 그 가치에 직도할 수 있는 감각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적인 가치에는 기술적인 완성과는 또 다른 형태의 것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의 전통미술 전반에서 나타나는 무심함, 소박함, 무기교, 미완, 천연스러움 따위는 이와 같은 한국인의 성정의 한 표현인 셈이다.  그 형태적인 면을 보면 언제나 기교를 중시하지 않는 듯 무심하게 처리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의 손의 재능이 무딘 것은 아니다.  고려불화가 말해주듯이 아주 섬세하고 세련되며 높은 기술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한국인도 극렬한 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완을 추구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주어진 삶의 조건, 즉 자연환경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지극한 완성을 추구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본질에 직도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색채만 하더라도 그렇다.  삼태극에서 볼 수 있듯이 삼원색을 중심으로 하는 오방정색(청,적,백,흑,황)은 색채배열의 기본적인 요소였다.  특히 순색으로서의 삼원색을 그대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민족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전통적인 복식 및 생활기물 그리고 건축물 따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삼원색은 거의 한국인의 상징색처럼 인식될 정도이다.  이처럼 원색적인 색채를 선호하게 된 것은 음양오행사상에 근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인의 성정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사계절이 뚜렷하고 습하지 않은 공기가 직선적인 성격을 만들었지 않나 싶다.  원색은 당연히 직선성이 강하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국인의 성격은 매사에 직선적이다.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를 명확히 밝히는 한국인 특유의 성격이 이를 말해준다.  애매하거나 모호한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은 그대로 명백한 원색의 성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그대로 나타난다.  동양의 그림은 선묘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인 바, 중국화의 경우 훈련을 통해 습득한 선묘의 격식에 따라 주어진 형태를 충실히 묘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일본화는 그림에 쓰이는 모든 선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높은 기교적인 완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며, 항상 세련되고 단정한 이미지를 지향한다.  이에 반해 한국화에서는 선이 개방적인 형태를 취함으로써 자유롭고 활달하며, 기교적이기보다는 직접적이다.  다시 말해 성정이 이끄는 대로 대범하고 솔직하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행위의 목적 자체를 잊는 듯 무심하다.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아서 어디인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본화의 경우 보카시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애매하고 모호한 어떤 정황을 묘사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물론 보카시기법은 수묵산수화에서 쓰이는 발묵기법과도 다른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표현기법이 개발된 것도 따지고 보면 습도가 높은 일본의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일본인의 삶의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습도가 높으면 시야가 좁고 시거리가 짧게 마련이어서 사물에 대한 시각적인 이해가 명료하지 못하다.  흔히 일본인의 성격 가운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데, 이 또한 자연환경과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냉혹한 무사중심의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정서의 한 여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개인의 예술적인 재능이나 그 표현이라는 것도 사회생활의 한 부분인 만큼 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삶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미술에서 진정한 독립은 영,정조시대의 문예부흥의 기운으로부터 발단한다.  영,정조시대는 실학사상의 전성기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과거의 학문적이 습속에서 벗어나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단행한 시기였다.  실학사상의 특징으로 요약되는 실용정신, 실증정신, 비판정신, 개방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 각 분야가 공허한 논리를 배격하고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미술분야에서도 중국의 화풍을 답습하는데서 벗어나 직접 한반도의 자연경관을 찾아다니며 그 특징을 몸소 체득한 뒤 그러한 이해 위에서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중국화풍과 다른 정 선의 그림과 같은 진경산수화 및 김정희와 같은 문인화가 나오게 되었고, 서민들 사회에서는 민화가 생활화의 형태로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장식용 및 주술적인(주로 가정의 평화와 안녕 그리고 행복을 상징하는) 성격이 강한 민화는 색채 및 형태의 단순성과 상징성 그리고 해학적인 이미지라는 독특한 형식 및 내용을 지닌, 진정한 한국적인 그림양식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개략적으로 기술하였듯이 동양삼국의 예술사상은 같은 종교적인 뿌리에서 발원하였으면서도 지리적인 조건 및 자연풍광 그리고 민족적인 고유의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정서를 배경으로 각기 독특한 표현양식에 도달하고 있다.  특정 민족의 미의식 및 미적 감각이란 생활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을 동안 저절로 형성된 민족의 공통적인 정서가 개별적인 미적 감각을 산출해낸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평화미술전 심포지움"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