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32) - 러시아미술의 현재

펜보이 2008. 2. 11. 11:55
 

  러시아 미술의 현재

 

  신항섭(미술평론가)


        

  영화 ‘닥터 지바고’는 반세기가 넘도록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동토의 공화국 구소련의 차가운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데 기여했다.  제정러시아가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시간선상에 무대를 설치한 ‘닥터 지바고’는 KGB로 상징되는 구소련에도 꿈과 사랑 그리고 서정적인 아름다운 계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닥터 지바고’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시무시한 나라로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꿈과 사랑과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고 싶은 동경의 땅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러시아가 마침내 외부로 향한 빗장을 열고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글라스노스트 즉, 개방 이후 러시아에서는 새로운 위험요소가 존재한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감으로 몰아갔다.  마피아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치안에 대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꼭 찾아가 볼만한 나라라는데 입을 모은다.  그만큼 러시아는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땅이다.  서유럽에 잇닿는 발틱해로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는 러시아의 무한한 잠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극동 연안의 작은 도시 나호트카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우리처럼 작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 제쳐두고 그처럼 드넓은 대륙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진면목은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 높은 예술과 국민들의 문화의식에 있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영화, 연극 등 모든 장르에서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오페라 ‘이반 수사닌’과 상트 페떼르부르그의 마린스키극장에서 키로프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고 나면 러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나쁜 인상은 금세 물러선다.  어디 그 뿐인가, 상트 페떼르부르그의 에르미타주박물관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을 보는 것으로 러시아의 문화예술의 저력을 실감하게 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키로프발레나 레닌필하모니 또는 볼쇼이오페라와 모스크바필하모니의 공연을 보면 한 달 정도는 매우 행복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러시아 사람들의 삶 속에 예술이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인 자유를 억압하던 숨 막히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그처럼 수준 높은 예술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다.  모든 사회체제가 공산당의 통제아래에 있던 상황에서 자유정신을 필요로 하는 예술이 그 생명력을 잃기는커녕 여전히 정상급 수준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 오면서도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과 결부하여 예술을 국민들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의문은 쉽게 풀린다.

  예술은 분명히 자유정신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구소련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매개로 하여 고도의 기능을 요구하는, 이른 바 기술적인 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우리가 감탄해마지 않는 고전발레를 비롯하여 오페라, 음악, 미술 등은 모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강령에 따라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보여준다.  물론 이와 같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복종하는 기술적인 예술도 사회주의 이념에 갇히지 않을 경우에는 높은 예술적인 성취가 가능하다.  리얼리즘 그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 표현양식의 하나인 까닭이다.

  우리가 개방 이후 볼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발레 오페라 음악 미술 등을 사회주의 산물이라 하여 무조건 무가치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현대예술은 기교 및 기술보다는 아이디어 즉, 새로운 표현방법에만 심취한 나머지 그 본질적인 것을 간과함으로써 가벼움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비하면 러시아의 리얼리즘 예술은 그것이 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것일지라도 예술의 건강성을 지키는 데는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있다.  오늘의 러시아 현대미술을 볼 때 이와 같은 점은 명백하다.  서구 현대미술이 감동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방 이후 러시아 현대미술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회복하고 리얼리즘의 기반을 소중히 함으로써 여전히 감동적인 요소가 표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구소련 시절 작가들은 모두가 국가공무원인 셈이었다.  개인적으로 아틀리에를 운영하거나 상업화랑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모든 미술관련 활동은 국가의 통제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국가는 작가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아파트를 신축할 때 맨 위층은 천장을 높여 작가들이 창작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아틀리에만이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일체의 재료 및 도구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작가들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나 그 밖의 공공시설 장식품 등을 제작하는데 참여했다.  한마디로 작가들의 개인적인 창작활동은 사적인 공간 즉, 아틀리에 안으로 제한되었다.  아틀리에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시회는 어떤 형태든지 간에 국가의 허가와 통제가 따랐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는 개인적인 창의성이 보장될 수 없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요하는 가운데서도 자연주의적인 작품은 허용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1956년 흐루시초프가 비밀연설을 한 이후 해빙 무드가 조성되자 일부 진보적인 작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하는 아방가르드 작업을 은밀히 진행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형태의 창작활동을 비공식 미술이라고 하는데 1964년 에르미타주박물관 지하에서 첫 전시회가 열렸으나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아방가르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작가들에 의해 지하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지하에서 활동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상징적이고 암시적이며, 또는 은유적이거나 반어적인 기법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표현하였다.  이들의 작업이 온건한 반체제적인 성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KGB나 그 밖의 정부 유관기관으로부터 직접적인 제재를 받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이들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작품은 러시아내에서는 발표에 제한을 받았으나 외국의 미술관이나 화랑에 의해 기획되는 해외전시회는 묵시적으로 허용되었다.  외국에서 관심을 가진 부분은 사회주의 리얼리즘만이 요구되는 소련에서 그것이 비록 비공식적이라고는 하지만 개방적인 미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미술이 외국에서나마 열릴 수 있었다는 것은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체제가 서서히 내부로부터 붕괴되어 가는 하나의 조짐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80년대 말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의 빗장을 풀어 밖을 향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미술활동에 더 이상의 국가적인 간섭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미술가들에게는 곧바로 예상치 못했던 시련이 닥쳤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신 창작과 관련한 모든 경비는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요구였다.  창작에 필요한 돈은 물론 생활비까지 스스로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들은 자유세계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작품을 직접 팔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작가에 따라서는 차라리 사회주의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작품을 팔지 못하는 작가는 사회주의 시절보다 오히려 생활이 더욱 궁핍해졌고 이로 인해 창작 여건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경제를 도입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균등한 분배를 원칙으로 해온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경쟁체제라는 새로운 현실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현실은 불가항력적일 수밖에 없다.  개방으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난 러시아에서 작가들은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도 더욱 힘든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른다.  러시아 국가경제가 모라토리움 단계에 이르렀다는 차가운 현실은 예술가들의 삶을 더욱 곤경에 빠뜨릴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러시아 작가들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우리나라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개인 화실을 공개해서 개인 레슨을 하든지 아니면 학원을 개설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러시아 작가들은 그림을 팔아 생활해야 한다는 문제 이외에 창작과 관련해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와 부딪치고 있다.  즉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길들여져 온 미적 감각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표현의 자유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조형개념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사회주의 시절 혜택을 누린 40대 이상의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입지 및 선택의 폭이 좁아진 반면 30대 이하의 작가들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젊은 작가들은 개방과 함께 서구 현대미술의 조형개념을 아주 빠르게 받아들이고 또 소화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맹목적으로 서구 현대미술의 방법론을 그대로 답습해온 일부 작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새롭다는 것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20세기 초 추상미술을 선도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부활하는 것이야말로 앞길에 대한 하나의 해법임을 간파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러시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가지 러시아에서는 미술에 관한 한 중앙과 지역의 편차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모스크바 및 상트 페떼르부르그를 중심으로 한 중앙 무대나 각 지역의 작가들의 작품 수준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주의 시절 문화예술을 향수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각 공화국 또는 주요 도시마다 미술관과 미술학교를 세우고 모스크바나 상트 페떼르부르그의 아카데미 출신의 유명 작가들을 교수로 발령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 지망생들은 어디에서나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 

  개방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어찌 생각하면 정보와 기회라는 측면에서는 지역 작가들이 중앙 작가들보다 불리한 것도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느 면에서 중앙무대 작가들이  서구 현대미술에 맹목적으로 심취해 있는 동안 전통 속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묵묵히 노력한 덕분에 빨리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서구 현대미술을 추종하다가 뒤늦게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새삼 관심을 돌린 작가들보다 유리한 입장이 된 셈이다. 

  아무튼 지난 반세기 동안 서구미술계가 표현의 확장을 위한 아이디어 생산에 주력하고 있을 때 러시아는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을 유지해 왔다.  적어도 아카데미에서 교육받는 동안은 사회주의 이념과는 상관없이 한 작가로서의 독립에 필요한 기초기술을 마스터하는데 충실했다.  이들 아카데미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세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 및 화화사상만 갖추어진다면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한 작가로서의 독립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 미술의 저력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즘에서 비롯된다.  아카데미즘 교육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죽은 미학의 생산 공장이라는 시각은 선입관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서구미술계가 더 이상 갈 데 없는 상황에 처하자 과학을 통해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지만 미술을 과학의 시녀로 만드는 일 그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체적인 기능을 과학의 하위개념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얻을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미래의 미술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할지 답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미술은 21세기 세계미술을 위한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러시아 작가들의 화실을 방문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리고 개방 이후 지난 10년간의 러시아미술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얻은 결론이다.  러시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러시아미술은 희망적이다.  휴일이면 혹한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문 열기를 기다리며 수십 미터씩 줄지어선 일반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있는 한 러시아 미술의 미래는 밝다.

  오늘 우리 작가들이 밖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러시아 작가들은 그들의 화실에 모여 보드카를 벗 삼아 밤을 즐기고 예술을 논하며 미술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작가들은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보드카와 치즈 한 조각이 전부인 그들의 초라한 술자리야말로 진정한 예술을 꽃피워내는 인생과 사랑과 낭만과 영감의 산실인 것이다.  곤궁한 삶이 곧 예술의 텃밭인 것이다.   <월간 '미술시대' 1999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