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29) - 미협의 개혁과 평론분과의 역할

펜보이 2008. 1. 2. 23:15
 

  미협의 개혁과 평론분과의 역할

 

  신항섭(미술평론가)

 


  한국미술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운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잡음 중에서 심사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미술계내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불공정 심사 정도가 얼마나 심하길래 미술대전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얘기가 나오는 걸까.  더 말할 것도 없이 운영위원 및 심사에 직접 참여했던 일부 작가들조차 미술대전이 현행대로 운영되어서는 종국에는 한국미술 전체의 신용 추락 및 수준을 저하시키는 원흉이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미 미술계에서는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심사와 관련한 금품수수 행위뿐만 아니라, 일부 유명작가들과 아마추어 작가들 간의 계약에 의한 ‘미술대전 응모작 그려주기’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관행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문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작가들끼리의 이해관계가 얽혀 고소고발 사건으로 비화되면서 급기야는 금품수수에 관련된 작가들이 검찰에 구속되는 등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일도 있다.

  실제로 미술대전을 보면 수상작 또는 입선작 중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기성 작가의 작품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데 놀라는 일이 적지 않다.  단순히 모방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을 만큼 색채 및 기법이 빼박은 듯이 닮아 있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그려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미술대전 심사과정 이전에 이미 부정행위가 시작되고 이와 같은 문제가 심사과정에서 모르는 채 넘어가거나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정한 심사를 기대하며 1년 동안 응모작 준비에 전력을 쏟아온 다수의 작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미술대전을 보면 특선작 중에서 적지 않은 숫자가 어째서 수상작의 대열에 끼었는지 미심쩍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옆에 있는 입선작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왜 특선작이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입선작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 버젓이 특선 명패를 달고 있기도 하다.  객관성의 결여야말로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가장 큰 비판적인 요인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해마다 미술대전 심사문제가 여론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미술대전을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고 하는 헌법조차도 개선의 여지가 많아 시대상황에 따라 보완해 나간다.  다양한 사회구성원에게 모두 균등하게 적용되는 완벽한 법제도를 만들고 운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법제도는 시대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문제점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법을 따르고 있다.  문제점이 발생하면 개선하고 개혁해나가는 것이다.

  미술대전 심사와 관련한 불공정 시비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해방 이후 설립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때부터 심사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뒷 얘기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미술대전의 불공정 또는 부정심사 문제는 이제 하나의 관행이나 전통(?)이 되고 있는 듯하다.  으레 있어온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또한 그만큼 무관심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단순한 인맥이니 학맥의 차원을 넘어 금맥으로 그 형태가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입상 및 수상이 돈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돈으로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팔고 사는 세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관행이라며 언제까지나 묵과할 것인가.

  미술대전의 불공정 및 부정심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미술협회 내부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협의 명료하지 못한 운영방식이 이러한 문제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방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심사와 관련한 금품수수 따위 사건이 사회문제화 될 때마다 미협의 인적구성 및 운영방식이 비판의 대상에 오르고 있으나 미술대전의 불공정 심사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문제점이 불거질 때마다 미협은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점이 없다.  이는 한마디로 미협 자체의 개혁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공청회 따위는 비등하는 비판적인 여론을 완화시키는 임시변통의 방패로 삼고 있을 뿐인 것이다.

  미협의 기구 중에는 평론분과가 있다.  그러나 평론분과가 미협내에서 과연 어떤 위치에 있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할 평론분과의 활동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자정기능을 맡아야 할 평론분과 회원들이 스스로의 권리 및 의무를 포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왜 그럴까.  어쩌면 미협내에서 평론분과는 소수이기에 발언권이 약한 탓에 소외되고 있는지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미협의 일원이라면 비평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평론가들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든지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좀더 능동적인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미술대전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평론분과 회원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은 평론가가 한 명 정도는 참여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미술대전에서는 평론가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았다.  미술대전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인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평론분과는 아예 참여의지를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미협 운영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당연히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혹시 그 동안 미협의 개혁을 위한 평론분과의 구체적인 활동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밖에서 보기에는 평론분과의 활동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협에 평론분과가 존재해야하고 그럴만한 당위성을 인정받자면 이제부터라도 미협의 개혁을 위한 평론분과 회원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2002년 '미술평단'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