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산책 - 미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금속활자기둥”을 세우자
신항섭(미술평론가)
도시미관 및 개발이란 미명 아래 콘크리트로 덮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놓은 지 30여년 만에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이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청계천을 복원계획을 발표하고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일을 끝내고 보니 정말 잘했구나싶다. 준공일로부터 반년이 채 되지 않았을 뿐인데 청계천에 발걸음 한 인원이 벌써 1천만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어찌 보면 단지 조경을 한 폭 좁은 개울물에 지나지 않는데도 무슨 볼거리가 그리 많다고 날이면 날마다 장사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잠시 고가도로를 떠받치는 철근조 콘크리트 기둥이 숨 막히게 도열하고 있던, 불과 두 해 전의 청계천 풍경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틀림없는 일이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계속되는 상황인데도, 청계천 양 편에 자리를 잡은 작달막한 가로수에 핀 꽃전등과 페르시아 어느 왕궁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루미나리에 불빛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진정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은 얼지 않는 개울물 소리 때문인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랬다. 개울물 양편 길로 들어서면 머리 위쪽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마저 차단돼 정말 대도시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는 것이다.
어디 이 뿐이랴. 청계천은 어느 새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서울을 찾는 지방 관광객들은 물론이려니와 외국관광객들조차 빠짐없이 청계천을 찾는다고 한다. 최근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인도영화에 청계천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청계천은 단지 서울이라는 도시의 얼굴을 바꾸어 놓은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꽃 등불을 달아준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역사에 대한 관심은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참으로 우리 스스로가 대견한 일이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 청계천 광장에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조각 올렌버그의 작품이 들어선다고 한다. 고동 모양을 확대한 대형 탑의 형태가 되리라고 하는데,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으나 일단 설치가 되면 생각보다 괜찮으리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국제적인 명성이 높은 작가라고는 하나, 거기에 한국작가의 작품이 우뚝하니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한 발 늦었다싶지만, 최근 어느 신축건물에 들어서는 조형물 설치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노주환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는, 피뜩 청계천 광장에 한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조형화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노주환은 수년 전부터 인쇄활자를 소재로 하는 독특한 작업을 하고 있다. 옵셋 인쇄에 밀려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금속인쇄활자가 무참히 버려지는 것을 목도하고는 무작정 수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대다수가 소실된 상태에서도 다행히 상당량의 금속활자를 모아놓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조형작업에 이용하게 된 것인데, 벌써 몇 차례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노주환의 작품 중에는 금속활자를 쌓아 둥근 형태의 컬럼, 즉 기둥을 만들어 세운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금속활자 하나하나를 누인 채 쌓아올려 거꾸로 양각된 글자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하여 둥근 기둥형태를 만들어간다. 따라서 인쇄활자의 크기가 작기도 하려니와 그 양도 한정돼 있어 대형작업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름 30센티미터에 전체 높이가 5미터에 달하는 활자기둥을 만들었다.
주지하다시피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은 직지심경이다. 당시 직지심경을 인쇄하는데 쓰인 것으로 판단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도 몇 개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는 독일의 구텐베르그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하니, 한국의 고대 인쇄술의 우수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금속활자 및 인쇄술의 우수성을 알고 있는 세계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정황을 생각할 때 만일 청계천 광장에 금속활자로 된 수십 미터의 컬럼, 즉 오벨리스크와 같은 형태의 활자기둥을 세운다면 한국인의 과학정신 및 문화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청계천 광장은 이미 올덴버그에게 넘겨주고 만 셈이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활자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20-30미터 정도의 높이로 금속활자기둥을 세운다면 틀림없이 세계적인 명물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 발명국으로서의 위상과 함께 한국인의 문화적인 역량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활자기둥을 세우는 일은 이처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도 중요하거니와 조형작품으로서도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답다는 점에서도 그 이유는 충분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활자들로 이루어진 원통형 표면은 상상하지 못할 질감 및 아름다움을 발한다. 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자 창의적인 발상의 조형언어이다. 활자의 집적이 만들어내는 그 조밀하면서도 변화무쌍한 표정은 창조적인 조형작품으로서의 높은 미적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전통에 의해 주조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실제 인쇄 현장에서 오랜 세월 문선공들의 손길에 의해 수많은 정보 및 지식을 담은 바로 그 실체가 금속활자임을 기억한다는 의미도 간과할 수 없다. 이 정도의 가치만으로도 금속활자기둥의 설치에 관한 타당성은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저런 형태의 기념조상이며 조형물이 널브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의 문화 및 역사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상징적인 기념탑이나 조형물은 아직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심장부, 서울을 상징하면서도 한국을 기억할만한 상징물 하나쯤은 이제 우리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올렌버그의 고동이 청계천 광장에 들어서면 그 작가적인 명성 및 인지도로 인해 서울의 명물이 될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이왕이면 창의적인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한국적인 상징물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우뚝하니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보다 더 뿌듯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창의적이고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담긴 활자기둥을 세우기 위한 시민모금운동이라도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혼자만의 꿈일까.
<예총에서 발행하는 “예술세계” 2006년>
“금속활자 기둥” 조성의 의의 및 필요성
(1) 고려시대에 간행된 “직지심경”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책자임.
(2) 금속활자의 발명은 한국과학기술의 개가로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상징물임.
(3) 그러나 “직지심경” 사본은 프랑스에서 소장하고 있을 뿐, 한국에는 없음.
(4) 따라서 인류의 지식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금속활자 발명국으로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
(5) 그 하나의 방안으로서 대한민국의 수도 그 중심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같은 대형 기념조형탑인 “금속활자 기둥”의 조성이 필요함.
(6) “금속활자 기둥”이 조성되면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서울의상 조형물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금속활자 발명국으로서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임.
(7) 이는 관광명소로서의 문화예술 도시인 서울의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음.
(8) 금속활자를 활용한 “금속활자 기둥”은 우수한 한국과학기술 및 지식문화를 알리는 한편,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한국인의 높은 예술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기회도 될 것임.
(9) “금속활자 기둥”은 동 주물기법으로 제작되는데, 크고 작은 수많은 활자들로 이루어진 원통형 표면은 상상할 수 없는 질감 및 아름다움을 실현.
(10) 또한 “금속활자 기둥”에 집적된 금속활자는 인쇄 현장에서 오랜 세월 문선공들의 손길에 의해 수많은 정보 및 지식을 담는 데 쓰인 매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음.
(11) “금속활자 기둥”이 세워지면 현재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는 ‘직지심경’ 사본을 되돌려 받는데 따른 결정적인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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