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길

명작의 길 (11) - 박용인

펜보이 2007. 9. 15. 11:45

 

 

  박용인의 작품세계 

 

  세련된 형태 및 색채감각의 이국적인 정서

 

  신항섭(미술평론가)



  예술의 첫째 덕목은 창작이다. 다시 말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새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존재성이다. 하지만 창작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일찍이 개별적인 조형성을 확립한 화가의 경우 그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조형성을 탐구하는 일은 여간한 각오가 아니고는 힘든 일이다. 이미 쌓아 놓은 탑 위에 또 다른 탑을 세우는 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이를 결행하는 작가가 간혹 있다. 자칫 자기부정으로 보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조형세계를 성립시키는 것은 정말 지난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재도전하는 것이다.

  박용인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환갑에 이르러 이제까지 쌓아올린 탑 위에 새로운 탑을 쌓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그 연배라면 대다수가 현재의 세계에 안주하는 경향임을 감안할 때 그의 도전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기대했던 대로 조형적인 변화를 위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최상의 결과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오히려 안주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기에 새로운 도전은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로서의 생명이 걸린 모험일 수밖에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의 도전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아름다운 도전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40대 초반에 개별적인 형식을 완결함으로써 주목받는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예술성에 대한 인정은 물론이요,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이른바 인기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로부터 그는 구상화단의 한 자리를 지키는 화가로서의 확고한 이미지와 그에 합당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의 작업은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인상주의 또는 표현주의나 반추상 등 다양한 표현양식 및 형식이 공존하는 구상화단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재현적인 형식이면서도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은 간명한 이미지를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그 전체적인 인상은 서구적인 정서가 짙었다. 이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파리에서 생활한 결과로 추측된다. 아무튼 그의 그림은 80년대 구상화단을 리드하는 대표적인 작가의 한 명으로 부각되면서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세련된 색채 및 형태해석을 통해 이국적인 정취를 표현함으로써 당시 서구적인 정서에 관심이 높은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일치했다. 그의 작업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환경 및 풍토에 갇히지 않고 서구적인 정서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풍경화의 경우 대다수가 파리를 중심으로 한 구라파의 고풍스러운 도시풍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정물화에서도 서구적인 생활기물을 소품으로 이용함으로써 이국적인 정취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데 일조를 했다.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구적인 생활양식으로 바뀌어 가는 시대적인 변화의 단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작품으로서의 예술적인 가치인데 그의 경우에는 이 문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갈색조나 회색조를 중심으로 한 구라파의 도시풍경은 서구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미술애호가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했던 것은 바로 서구세계에 대한 동경심과 무관하지 않다. 고상하고 세련된 색조에다가 서구적인 정취가 강조되는 고풍스러운 풍경을 단순화하여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조형적인 감각과 색채이미지는 확실히 우리의 평균적인 미적 감수성에 훨씬 앞서는 것이었다. 어느 면에서 그가 이룩한 조형적인 개별성은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 구상화단에는 하나의 좋은 본보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업방식을 추종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처럼 독자적인 화풍을 성립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형식은 199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그 자신도 이 문제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환갑을 넘기면서 마침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최근 작업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형태의 세부를 생략하거나 단순화하면서 전체적인 인상을 간명하게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색채이미지와 표현기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빛과 음영의 대비가 강화되는 대신에 형태를 숨기는 듯이 애매하거나 모호하게 처리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색채이미지 또한 이전보다 순화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형태의 모호성으로 인해 시각적인 이해가 명료하지 않다. 대신에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의 정서에 빨려들어 가게 하는 흡인력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는 현실과 일정한 경계를 긋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어떤 풍경이든지 실제로부터 한 걸음 물러선 채 회화적인 환상을 실현하는데 적극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풍경을 그 자신의 의식 속에 끌어들인 다음 새로운 형식미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보다 증폭된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환상적인 이미지는 그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적인 이상미와 다르지 않다. 현실을 회화적인 이상에 맞추어 재해석함으로써 실제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움 또는 차가운 시각적인 이미지를 한결 완화시키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는 보여지는 사실에 대한 시각적인 이해보다는 그림의 내적인 정서에 비중을 높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 작업 중에는 설경이 많은 데 이는 전체적인 형태미를 약화시킴으로써 비롯되는 시각적인 모호함을 극복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눈과 물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극적인 명암대비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눈으로 덮이는 풍경은 간결해지게 마련이다. 세부를 생략하거나 단순화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자신의 조형적인 특징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가 나지 않는 겨울의 음산한 정서는 그가 추구하는 모호한 시각적인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이에 반해 여름이나 가을 풍경은 대체로 햇살이 넘치는 전형적인 한국의 청명한 날씨를 반영하고 있다. 몽고고원의 초원을 그린 몇 작품도 극명한 명암대비를 통해 명쾌한 이미지를 얻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명암대비가 실제보다 과장되는 듯한 느낌인데 역시 회화적인 환상의 일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기가 맑으면 시야가 확장되기 마련이다. 몽고 초원을 그린 작품들은 맑은 대기의 인상을 극적인 명암대비를 통해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조형어법은 실제에 얽매이지 않는 회화적인 환상을 추구한다. 그림이란 어차피 현실과 동일시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일 따름이다. 아무리 실상을 재현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림이란 평면에서 벌어지는 일루전이라는 비현실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의 그림에서 색조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색상의 폭을 단출하게 정리함으로써 시각적인 이미지가 명쾌하다. 이처럼 색채를 소수로 한정하여 평면적인 이미지에 가깝게 표현함으로써 간명한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간명해지면 시각적인 이해보다는 정서적인 호소력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이렇듯이 정서적인 호소력은 자연히 서정적인 분위기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형태가 단순하고 구성이 간결해지면 상대적으로 감상자는 시선을 작가의 내면으로 돌리게 된다. 함축적이고 간결해진 이미지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감상자 자신이 비로소 그림 속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효과는 서술적인 문장보다는 함축적인 운문형식의 글이 한층 여운이 길고 음미할 점이 많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최근 그림에서 시적인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미적 감흥을 일으키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당연한 요구이다. 이 때 시각적인 함축적인 이미지가 없으면 시적인 정서를 맛보기 어렵다. 시적인 정서는 구체적인 사실 및 실제적인 현상을 함축함으로써 가능하다. 설명적인 요소를 최대한 줄일 때 시적인 긴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어느 풍경이든지 사색을 유도하는 시적인 정서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그 자신의 견해가 명확해졌음을 반증한다. 많은 것을 담지 않고도 자신의 속마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대담한 생략이 가능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그의 새로운 조형적인 변신은 일단 성공적이다. 이전의 형식으로부터 완전히 달라진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개별적인 형식의 제안이라는 점에서 그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은 그 자신을 또 다른 세계 속에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 창작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03년 개인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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