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자리

찻자리 (5) - 신현철의 찻사발 '노경'

펜보이 2007. 8. 24. 12:15

 

 

     

                                                                                                     신현철 작  "노경"

  讚.‘老境’

 

  藝術性을 벗어난 神物

 

  신항섭 (미술평론가)


  도자기는 과연 ‘神(신)의 靈物(영물)’인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만드는 것은 도공인데 ‘신의 영물’이라니 어찌된 일인가.  그렇다.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도공이지만 그 최종적인 그릇의 상태를 결정짓는 것은 가마 속의 불이기에 반드시 도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窯變(요변)이라는, 도공의 의지가 미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 요변이 어쩌다 기대하지 않는 명품을 가져다주는데,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도공에게는 ’생애의 행운‘이 되는 셈이다.

  신현철의 ‘老境(노경)’이라는 이름의 분청 차완이 바로 ‘신의 영물’이라는 표현에 합당한 그릇이다.  ‘노경’은 신현철과 神(신)이 합작하여 탄생시킨 명품인 것이다.  찻잔으로 쓰기에는 좀 크다싶은 사발이다.  분청이라고는 하지만 듬성듬성 백토분장이 허물어져 청자빛깔을 머금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백토분장은커녕 유약마저 닿지 않아 속살(胎土)을 그대로 드러낸 부분도 있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입은 비뚤어지고 굽은 찌그러지다 못해 패여 한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게다가 가마 속에서 열이 지나쳐 釉(유:표면 균열)로 안팎이 뒤덮였다.  또한 유약이 고르지 않아 좀 지나치게 묻은 데는 눈물자국처럼 흘러내린 듯한 자국도 있다.  굽 안쪽 역시 센 열을 견디지 못하고 갈라져 큼직한 골이 패였다.  그런가하면 그릇을 만들 때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손가락 끝에 힘을 가해 그만 밑 부분에는 물레자국을 따라 움푹한 손가락자국이 나있다.  이 부분이 갑자기 경사면이 됨으로써 사발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형태가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표면은 또 어떤가.  釉(유)만 해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유약 성분에 따라 또는 불의 강도에 따라 생기는 유는 대부분 거의 비슷한 형태의 균열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노경’의 유는 규칙적인 흐름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균열의 크기 및 형태가 다양하게 분포된다.  백토가 두텁게 칠해진 부분과 얇게 칠해진 부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이요, 유약이 덮인 정도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군데군데 미세한 기포 자국이 선명하다.  그런데다가 굽 부분과 몸 쪽으로 흑갈색 태토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유약이 닿지 않아 생긴 흠인데, 그릇을 거꾸로 쥐고 유약통에 집어넣었다가 꺼낼 때 남겨진 손가락 자국이 찻물에 들어 생긴 상흔이다.  표면의 피부는 당연한 일이지만 사뭇 거칠다.  패이고 터지고 갈라지고 떨어지고 불거지고 일그러져 있다.  도무지 어디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다.  이러한 모양은 그릇 안쪽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안팎을 살펴보아도 도대체 온전한 구석이 전혀 없다.  설령 일부러 꾸미려 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철저히 구석구석을 처참한 형태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참으로 기이한 모양의 그릇이다.  만일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라면 어디 한군데는 부자연스러운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심으로 다시 보지만 결론적으로는 ‘火神(화신)의 조화’일 수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경’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적어도 몇 백살은 족히 나이를 먹고 있다.  이승에 오기 전에 어딘가를 마냥 떠돌다가 불현듯 누군가의 부름을 받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이 세상에 왔다고는 할 수 없다.  정신이 온전한 도공이라면 어찌 이처럼 끔찍한 몰골의 그릇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도자기도 하나의 고유한 형태와 생명을 가진 존재이거늘 어찌 그처럼 못생긴 형상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심술이 궂은 도공이라고 할지라도 그릇의 형태에 익숙한 손끝이 그처럼 기괴한 형상을 만들도록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경’은 차마 형언키 어려운 몰골로 이 세상에 왔다.  전생에 무슨 업이 그리 많았기에 그처럼 흉물스러운 상을 받아들였을까.  전생 어느 곳에선가 거친 세파에 견디다 못해 잠시 이승으로 쉬러 나온 걸까.  수 십년 동안  전장을 떠돌다가 겨우 생명만 부지한 채 귀향한 상처투성이 노병의 남루한 행색이 이러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경’은 그 외양과 달리 힘차고 당당하다.  물레질할 때 거칠게 다룬 탓일까.  아니면 그처럼 참담한 모습으로도 끝내 그릇이기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태도 때문일까.  결코 허물 수 없는 의연함이 그릇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을 간단히 물리친다.  자신을 몹시 거칠게 다룬 도공에 대한 반발인지도 모른다.  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 즉 대지의 육중한 생명력이 감지된다.  자신의 힘으로 설 수 있다는 어떤 확신에 찬 몸짓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노경’은 태어나는 순간 그 주인의 손길을 거부하였다.  가마에서 꺼내 햇볕을 씌워준 주인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주인의 안사람이 그릇으로서의 숨겨진 됨됨이를 알아채고 얼른 감싸안아 들였다. 

  ‘노경’은 스스로 많은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눈 밝은 사람들에게나 은밀히 읽혀지는 갖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릇의 바깥쪽을 보면 오리온자리의 삼태성과 카페우스자리의 별들이 명멸한다.  그 밖에 아라비아의 목동자리, 용자리의 용머리 등의 별자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그릇의 안쪽에는 동북아시아가 한 눈에 들어오고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나란히 자리한다.  아울러 입 가까이 하얀 국화꽃 한 송이가 보석처럼 박혀있다.  그런가하면 세 개의 종유석 석순이 자라고 있으며, 미완성의 달마상도 눈에 띈다.  이 정도의 신화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다.  특별한 심미안의 소유자라면 논문 한 편은 넉넉히 채울 만큼 많은 얘기가 숨겨져 있음을 간파할 것이다.  ‘노경’은 많은 비경을, 비밀스러운 얘기를 숨기고 있다.  지구를 포함하여 우주까지를 포괄하는 무한한 경계가 거기에 있다.  어쩌다 잘못된 사발 하나에 그 무슨 터무니없는 조작이냐고 말하는 이에게는 유구무언이다.  만든 이에게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화신이 그리 만들었으니 그것은 분명히 도공의 의지를 떠난 실패작이다.  그러기에 ‘노경’은 예술품은 아니다.  예술품이라면 만든 이의 의지대로 이루어졌어야 한다.  신묘한 불의 요술이기에 인위성(예술성)을 벗어나 자연성으로 귀결할 수 있었으리라.  ‘노경’은 자연이다.  불의 弄奸(농간)이다.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신현철과는 상관없는 자연의 일부였다.  신현철의 능력 밖에서 이루어진 초유의 사건인 것이다. 

 

       

 

  그 동안 ‘노경’의 본색을 알아본 이가 적지 않다.  승려보다는 화가로 더 알려진 중광스님은 본인의 그림 한 점과 맞바꾸자고 제의했으며, 1998년 동경전시회에서는 일본 국회의원이 아주 큰돈으로 매입하고자 했고, 일본의 한 사업가는 딸의 혼수로 맞아들이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어떤 변호사는 몇 번이나 들러 탐했지만 결국 소유인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렇다.  ‘노경’은 이미 존재하는 그릇의 가치로 환산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노경’은 그릇이 아닌 것이다.  그릇의 용도로 사용할 때만 못생긴 그릇일 뿐이다.

  신현철의 사발(茶碗 차완)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같은 모양이 반복되지 않는다.  그릇 하나 하나에 고유의 자기생명력을 부여하려면 같은 얼굴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노경’은 그런 생각을 통해 아주 특별한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신현철) 아니고서야 어찌 화신과의 接神(접신)이 가능했겠는가.  우리는 ‘노경’을 통해 비로소 ‘화신’의 존재를 의심치 않게 된 셈이다.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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