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자리

찻그릇 - '신이도다완'

펜보이 2007. 6. 26. 10:55
 

                                                                                  "낙엽" 일본 노무라미술관 소장 청이도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찻그릇을 위해



1. ‘이도다완’과 ‘신이도다완’


지난 1월 말 일본에 갔다가 정말 너무도 놀라 가슴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전례로 보아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해탄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막연히 ‘이도다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처럼 가벼운 생각이 현실화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일본행이 ‘이도다완’과 관련된 일이어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사전에 그 어떤 약속도 없었기에 별안간 ‘이도다완’이 눈앞에 놓이는 순간 숨이 멎어 아득해지는 심정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그 순간을 돌이키면 여전히 가슴이 떨린다. 단순히 ‘이도다완’ 진품을 보았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옛 찻사발이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인 감복이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대이도’와 ‘소이도’ 그리고 ‘청이도’, 이렇게 셋이 한 자리에 불쑥 나타났으니, 제아무리 강심장인들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다. ‘이도다완’이 상자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도다완’과의 첫 대면은 그렇게 예고 없이 벼락같이 찾아왔다.

한 시간 남짓 손에 담고 4백 살이 넘은 피부를 만지는 감회는 실로 벅찬 것이었다. 생물이야 나이가 들수록 그 아름다움이 거칠어지지만, 골동은 되레 묵은 아름다움이 짙어지니 신기한 일이다. 사진으로 알려진 여러 ‘이도다완’에 전혀 꿀릴 것 없는 완벽한 기형의 ‘대이도다완’과 폭삭 곰삭은 ‘청이도다완’은 이미 찻그릇으로서의 아름다움 그 맨 끝에 도달해 있었다. 온 몸을 전율시키는 그 고태미를 어찌 다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길지 않은 시간이리라 짐작하며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려 조급해지는 심사와 더불어 온갖 상념으로 머리가 산란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놓은 조선의 도공의 모습, 거기에 세월의 때와 진한 차심이 한 몸이 되도록 차를 마신 이들의 그림자,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진면목을 보려 4백여 년의 세월을 소급해가는 한국 차인들의 발걸음이 이리저리 교차했다.

그러면서 지난 1월5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초대전에 출품했던 吉 星(길 성)의 ‘신이도다완’을 떠올렸다. 왜 ‘이도다완’이라는 명칭 앞에 ‘신’자를 붙여 ‘신이도다완’이라고 했을까. 거기에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가 담겨 있다. ‘이도다완’과 같은 몸체를 가진 찻그릇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만든 이가 다를뿐더러, 그 조형적인 감각에도 차이가 있는데다, 또 이미 4백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으니 재현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동일한 흙과 유사한 유약이라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이것은 마땅히 ‘이도다완’의 부활이라고 할만하다. 부활일지언정 4백여 년의 세월이 만들어 놓은 고태마저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새로운 ‘이도다완’, 즉 ‘신이도다완’이라는 명칭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실제로 3점의 ‘이도다완’과 소통하면서 ‘신이도다완’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징을 오버랩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의 간격에서 오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치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왠지 이상하게만 여겨질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육각형 형태의 빙렬이 그러하고, 굽 주변에 형성된 매화피에다 비파색이 영락없는 ‘신이도다완’이었다. 그 나머지는 만든 이의 솜씨에 따른 차이가 있을 따름이었다. 매화피도 일부러 의식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실제로 ‘이도다완’을 만든 이가 매화피를 염두에 두었을 리가 없다. 매화피란 불이 만든 조형적인 기교일 따름이기에 그렇다. ‘이도다완’에서 불의 조화가 어디 한 두 가지랴만, 매화피라든가 빙렬, 그리고 비파색은 만든 이조차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물론 불의 조화를 가능케 한, 그런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은 순전히 도공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가마에 넣으면 모든 결과를 불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다.

‘신이도다완’은 ‘이도다완’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을 그대로 답습한다. 단지 사진을 보고 흉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형질의 동일성이 그러하다. 재질이 같지 않고서야 어찌 4백여 년의 세월을 간단히 건너뛰어 동일한 구조의 몸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도다완’의 그 외형적인 특징은, 1300도에 달하는 산화염 및 환원염임에도 도기 성질에 가깝고, 그래서 자기와는 다른 결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릇이 숨을 쉬며 안팎이 소통을 한다. 또한 육각형 형태의 자연스러운 빙렬은 물론, 유약과 태토가 한 몸이 되어 갈라지면서 형성되는 특유의 매화피, 태토에 물드는 검은색의 타닌 색깔, 여기에다 죽절 형태의 굽과 몸체에 두른 힘차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대담한 물레의 성형자국, 그리고 그릇 안쪽에 있는 차 고임자리 따위는 ‘이도다완’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특징이다.

                                                                                       일본 노무라미술관 소장 , 청이도'낙엽'

 

‘신이도다완’은 ‘이도다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이도다완’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만든 이의 기질에 따른 골격의 담대함과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을 일본의 어느 학자는 ‘무심’이라고 표현했는데, 무르익은 솜씨에 의해 저절로 나오는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시 말해 물레를 돌리는 이의 조형적인 감각의 결과로써, 잘 만들어야 된다는 의식 없이 그저 손과 마음이 가는대로 내버려두는 경지일 것이다.

‘신이도다완’은 다완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형적인 비례를 탓할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기술적인 완성도라는 점에서는 더 이상 요구할 것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기술적인 완성도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신이도다완’이 내보이는 현실이다. 따라서 ‘신이도다완’은 자연스러움으로 감상하는 이의 미적 심미안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와 직면하고 있다. 단순히 닮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신이도다완’의 전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정녕 어디에도 마음의 걸림이 없는 무애의 경지에 돌입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리라. 세상을 의식하지 않은 채 오직 물레질 그 자체에 심신을 의탁하는 진정한 몰입이야말로 ‘이도다완’의 비밀에 육박하는 자연스러운 표현을 이끌어내는 요인일 것이다.

진품 ‘청이도’는 참으로 자연에 가까웠다.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을 덥석 떼어다 놓은 듯싶었다. 이미 절반쯤은 흙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감상용이 아니라 진정한 찻그릇으로 쓰인 결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이도다완’ 가운데 어떤 청이도는 진품을 빼어다 박은 듯싶은 경우도 없지 않다. 단지 자연스러움과 세월의 무게 그리고 깊이만이 빠져 있을 따름이다. 진품 ‘청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신이도다완’은 ‘이도다완’에 대한 갈증을 능히 해소시킬 만한 형태와 품격을 지녔다. ‘이도다완’의 부활은 정녕 헛된 꿈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항섭)

 

<"차인"지 2007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