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자리

찻그릇 (2) - 찻그릇의 기능성

펜보이 2007. 6. 26. 11:06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찻그릇을 위해


 

2. 찻그릇의 기능성


차를 마시는 일은 이제 일상사가 되었을 만큼 우리의 삶에 밀착되어 있다. 녹차를 마시는 인구만 해도 줄잡아 5백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가히 차의 부흥기라고 할만하다. 그러다보니 차 도구를 비롯하여 차와 관련된 주변산업도 크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찻그릇의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도예가들의 숫자도 비례하여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부에서는 도예가들이 ‘찻그릇으로 밥을 먹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인사동 거리를 나가보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찻그릇들이 상품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예가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형태나 재질 그리고 색상에서 다양한 찻그릇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찻그릇을 선호하는 차인들의 욕구와 맞물려 도예인들의 창작 욕구를 진작시키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찻그릇을 파는 가게나 또는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면 실로 다양한 찻그릇이 만들어지고 또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취미성이 강하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차를 마실 것인가의 문제부터 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차도구와 찻그릇 하나까지도 자신의 미적 감각이나 취향을 기준으로 선택하게 된다.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찻그릇을 보고 만지고 느끼는, 이른 바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미적 감각의 영역에 드는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외적인 문제와 더불어 찻그릇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면까지고 주시하고 있다. ‘웰 빙’의 바람이 불면서 차가 마치 만능의 음료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차를 잘 마실 수 있는 방법과 연관성이 있다. 차를 잘 마시는 방법이란, 다름 아닌 진정한 건강음료로서의 장단점을 정확히 인지함으로써 자칫 차로 인해 인체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이나 해로움을 예방할 수 있다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차인들은 차가 인체에 무해한 음료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차에는 커피의 카페인과 같이 그 양이 지나치면 사람에 따라 몸에 해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차를 다량으로 장복하는 이들에게서 더러 나타나는 차병이 하나의 예에 해당한다. 주지하다시피 차는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몸이 차가운 이에게는 양이 지나치면 부담이 될 수 있다. 차의 성질 중의 하나인 냉한 기운이 원활한 신진대사를 장애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차의 여러 가지 성분 중에서 타닌만 하더라도 적정량이라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인체에 도움을 주지만, 자칫 지나치면 위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한 연구기관에 의해 타닌의 과다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실험결과가 발표된 일도 있다. 이처럼 차의 다양한 성분 중에서 타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차를 물마시듯이 음용하는 일부 차인들에게는 타닌에 대한 이해 및 각성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차가 만능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차에 들어 있는 타닌의 양을 감소시켜주는 찻그릇이 있다고 해서 일부 차인들 사이에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도다완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길성도예’(대표 길 성)의 ‘신이도다완’이 그 주인공인데, 타닌의 양을 현저히 감소시켜 차맛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주지하다시피 차에서 느끼는 떫은맛이 바로 타닌성분을 나타낸다. 차의 다섯 가지 맛 중에서 떫은맛이 강하면 전체적인 차맛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떫은맛이 강하면 타닌 성분이 많이 우러나왔다고 보면 틀림없다. 이는 대체로 찻물의 온도가 높을 경우에 생기는 현상으로 찻물 색깔에서는 갈색을 띠게 된다. 타닌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차의 등급에 따른 찻물의 온도 조절이 요구된다.                           

‘신이도다완’은 특이하게도 차에서 우러나온 타닌을 현저히 감소시켜 차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떫은맛이 감소함으로써 차맛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신이도다완’으로 차를 마시다보면 이와 같은 현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백토분장의 ‘신이도다완’을 사용해보면 찻그릇 바깥 면에 짙은 갈색이 착색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찻물에 녹아 있는 타닌 성분이 ‘신이도다완’의 물리적인(재료적인) 특성에 의해 찻그릇 바깥으로 배출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찻물이 찻그릇 밖으로 배어나오는 현상은 분청류의 찻그릇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다만 ‘신이도다완’의 경우 수분이 밖으로 나오는데 그치지 않고 타닌 성분이 함께 배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러 달 차를 마신 ‘신이도다완’을 깨뜨려 단면을 보면 찻그릇의 몸체는 원래의 태토 색깔 그대로인데 반해 유약이 묻은 안팎에는 암갈색의 찻물이 침착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타닌 성분이 찻그릇 몸체를 통과하여 바깥으로 배출되는 순간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갈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타닌이 찻그릇 바깥으로 배출되는 것은 태토 및 유약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성질과 화학적인 반응의 결과인 것이다. ‘신이도다완’ 파편을 물속에 넣으면 물방울이 올라오는 현상이 나타난다. 찻그릇의 태토에 기포가 형성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신이도다완’과 사천 및 웅천에서 나온 사발 파편 단면을 현미경으로 확대 촬영한 사진자료에서 ‘신이도다완’은 다른 찻그릇의 불규칙한 결정구조와 달리 스펀지와 같은 일정한 결정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숨을 쉬는 찻그릇’으로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토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특성이 찻물과 만났을 때 어떤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좀더 세부적인 연구가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제시된 결과만으로도 ‘신이도다완’의 기능적인 특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신이도다완’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좀더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현재까지 확인되는 순화된 차맛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타닌을 감소시키는 효과만으로도 ‘신이도다완’은 새로운 찻그릇으로서의 효용성은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이를 잘 연구하면 ‘이도다완’의 진정한 본향으로서의 영광을 되찾는 것은 물론, 현대적인 ‘이도다완’이 새롭게 각광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도다완이 찻그릇으로서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차맛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을까. 왜 이런 추측이 가능하냐 하면 ‘신이도다완’과 ‘이도다완’의 그 세부적인 특징이 너무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이도다완’에서 볼 수 있는 유약이 묻지 않은 태토 부분에 침착된 암갈색은 ‘이도다완’의 한 특징이다. 이로써 예측할 수 있듯이 만일 ‘이도다완’과 ‘신이도다완’이 같은 흙과 유약을 썼다면 ‘이도다완’ 역시 차맛에서 다른 찻그릇과 달랐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항섭)

 

 <'차인' 지2007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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