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자리

찻자리 (4) - 신현철 다구전

펜보이 2007. 8. 23. 12:25

 

                                                                                                                   차주전자

      

 

신현철 다구전

 

신항섭(미술평론가)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으로서의 참모습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자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일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세계를 영위하는 데 있다. 동물적인 본능의 세계를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는 바로 인간문명을 일군 원동력인데, 정신적인 가치는 이와 같은 인간문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인간이 일구어낸 다양한 문명 중에서도 다도, 즉 차를 마시는 행위는 예술과 더불어 정신적인 가치의 한 정점을 이룬다. 다도는 문화의 한 형태를 띄고 있지만 차를 마시기까지의 그 과정을 보면 하나의 예술이고 도이다. 단순히 차를 음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다운 행위의 근본에 대해 물음을 던지면서 동시에 그 답을 주고 있기에 그렇다. 차를 마시는 행위 그 과정을 보면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진실한 예술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인간이 지어낼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모습이 다도 속에 깃들이고 있는 것이다.

차와 마주하는 다도의 아름다움은 숨결이 멈춘 듯한 정적, 즉 고요에 있다. 그 고요는 세상의 온갖 번잡함을 말끔히 물리친다. 그러기에 차를 마시면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와 세상의 경계를 실감하게 된다. 이는 놀라운 자각이다. 나를 통해 바라보아야만 세상이 바로 보인다. 다도는 그런 일깨움을 준다.

 

 연잎 다구

 

다도에서 갖가지 번잡한 도구(다구)를 챙기며 예법을 가르치는 것은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진실한 모습에 이르는데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다구 하나 하나는 차를 마시는 행위, 즉 그 예법의 절차를 지키는 데 긴요하다. 생각해 보면 차를 마시는데 그 무슨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다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차가 단지 마시는 것으로 끝난다면 음료를 마시는 일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도는 인간의 정신적인 경계를 높이 끌어올리는 일이다. 감정의 격랑을 억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정신성을 선명히 부각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다구 하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경계를 높이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징검다리인 셈이다.

다구는 대체로 흙으로 만들어진다. 도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구는 그 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금 은 주석 구리 옥 대나무 나무 그리고 흙 따위의 재료를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흙이 가장 널리 쓰인다. 재료도 구하기 쉽고 만드는데도 힘들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 차 마시는 일을 다도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다구를 만드는 일 또한 간단치 않다. 도를 행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그 용도, 즉 차를 마시면서 정신을 맑게 가다듬는다는, 다도의 쓰임새에 알맞도록 해야 함은 물론 모양의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외면할 수 없다.

 

 연꽃 다관

 

그런데 용도가 같다고 하여 모든 그릇이 다 같지 않듯이 다구 또한 만드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다구는 일반적으로 차를 가는데 사용하는 맷돌을 시작으로, 차를 덖는 솥, 찻물을 얻기 위해 불을 피우는 풍로, 물을 끓이는 탕관, 잎차를 우려내는 다관, 끓인 물을 식히는 숙우, 차를 마시는 찻잔, 찻잔을 받치는 차탁, 찻잔을 놓는 쟁반, 차를 담는 차호, 차를 떠내는 찻숫가락 및 말차가루를 젓는 차선, 물을 떠담는 표주박, 찻잔을 닦는 찻수건, 다구를 진열하는 찻상 그밖에도 부처님에게 차를 올리는 헌다기, 화병, 물을 담는 항아리, 차선꽂이 따위를 총칭한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차를 마시는데 쓰이는 다구는 생각보다 많다. 그만큼 다도는 절차를 중시했던 것이다.

이번 신현철다구전에는 위에 나열된 다구들 대다수가 진열된다. 물론 흙으로 된 다구로는 신현철 자신이 직접 제작한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는 다구 중에서도 찻잔류에만 한정하는 도예가들과 달리 다양한 형태의 다구를 만든다. 오랜 동안 차와 생활을 같이하면서 스스로 필요해서 만들기 시작한 다구들이 모여 전시회를 갖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흙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 백자와 분청 천목이 망라되는 그의 다구는 외형에서 독특한 향과 멋을 풍긴다. 그 향은 흙의 이미지와 더불어 나오는 것이며, 멋은 도자기를 빚는 무르익은 솜씨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좋은 다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흙을 선별하고 성형을 하며 가마에 굽는 일에 오랜 경험이 있어야 할뿐더러 미적 감각, 즉 예술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 물론 도공 스스로 차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흙으로 만들더라도 다구에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경험이 바탕이 되어 만든 다구는 눈으로만 익혀 만든 것과는 당연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신현철의 다구는 확실히 다르다. 그의 다구가 차인들에게 귀한 물건으로 대접받고 있는 이유도 그 또한 차인이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다시 말해 차와 다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오랜 동안의 음용 및 제작 경험을 통해 현대인의 차 생활에 적합한 형태와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터득하고 있다. 스스로 다구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접근하므로 일단 기능성 및 형태에 대해서는 탓할 데가 없다.

 

             

              연잎 다관

 

무엇보다도 그는 전통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들의 현실적인 차 생활에 적합한 형태미와 기능성을 중시한다. 그래서일까. 찻잔으로부터 찻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끝에서 비어져 나온 다구는 하나 하나가 실용적이고 소박한 인상이다. 그리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지 않는 다정함과 따스함이 있다. 이렇듯이 어떤 경우에라도 차를 마시는 데 필요한 집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정감을 중시한다. 완상미를 내세우며 짐짓 고상한 체 하지 않는 겸허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박한 형태미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귀한 차를 마시는데 쓰이는 다구로서의 기품을 외면하지 않는 까닭이다. 비록 화려한 비단 옷이 아닌 무명옷을 입었으나 깊은 인생통찰과 높은 학문으로 다져진 선비의 모습처럼 은근하게 다가오는 품격을 놓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다구의 품격은 순전히 도예가이자 차인으로서의 절제된 생활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전통도자기를 재현하는 데서 출발한 그의 도예작업은 언제나 현실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완상적인 가치에 치중하기보다는 실용적인 가치를 우선하였다는 뜻이다. 완상의 대상으로서는 청자 및 백자 그리고 분청 따위의 선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옛 작품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도자기는 생활용구에 지나지 않았다.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집기로서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그 자신으로 하여금 창작도예의 길로 선회하도록 이끈 요인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그의 도예작업은 어떤 형태의 그릇이더라도 흙의 창조물이라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도자기는 불에 구워져 보석과 같은 형태로 그 모양을 바꾼다고 할지라도 흙의 본성을 잃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이처럼 도자기를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흙의 본성을 형태미 속에 자연스럽게 노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그의 화두였다. 그 명료한 하나의 답이 자연성 또는 자연미임을 그는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차주전자

 

그의 도자기는 어떤 용도로 만들어지든 투박하고 힘차며 단순하다. 가능한 한 기교적인 멋을 멀리하고자 한다. 물론 그릇의 용도에 따라 기술적으로 치밀하고 정확하며 세련된 형태를 추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창작도예를 표방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보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형태미를 통해 그 예술적인 가치를 획득코자 한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형태미란 다름 아닌 흙의 이미지를 실현하는 일을 의미한다. 도자기에서 흙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다구에서는 흙 냄새가 풍긴다. 그리고 손의 감촉에서 역시 흙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시각적으로는 투박하면서도 자연미가 담긴 흙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시각 및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 자연스러운 흙의 이미지는 필경 차의 맛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오직 혀끝으로만 맛을 내는 것이 차의 본질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다구도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게끔 되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도라는 것은 차를 음용하는 행위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차와 다구와 맑은 정신이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비로소 다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다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부단히 의식한다. 손끝의 기술 및 기교를 떠난 지점에 자신의 존재를 두는 것이다. 다구를 만드는 일 또한 다도의 연장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1999년 "신현철다구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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