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음을 선물하는 ‘작은 콤포넌트’들
신항섭(미술평론가)
오디오는 레코드 및 자기테이프 또는 콤팩트디스크 따위의 소스에 압축해 넣은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 및 전기적인 장치를 총칭한다. 오디오 기기를 만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오디오 엔지니어들의 목표는 실연, 즉 실제의 음악연주에 육박하는 재생장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오디오는 전자과학 분야의 발달과 더불어 실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저항과 콘덴서, 트랜스, 진공관 따위로 요약되는 초기의 오디오는 간단한 회로만으로도 참으로 기적적인 아름다운 재생음을 들려주었다. 초기에는 음악연주장이 아닌 어디서나 원하는 시간에 재생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할 일이었기에 음질 따위를 논할 계제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일반적인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연구를 거듭했다.
좀더 실연에 가까운 재생음을 위해 저항이나 콘덴서의 작은 부품의 특성을 향상시키는 일에서부터 스피커의 재질은 물론이요, 공명이나 음의 확산과 관련한 음향문제, 전기의 품질과 진동문제 그리고 케이스의 재질에 따른 음질변화 따위의 문제들에까지 연구의 범위는 넓어졌다. 그런가 하면 신호전달체계에 따른 음질변화문제도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실연에 근접하는 재생음’이라는 목표와 연관된, 이처럼 잡다한 문제들을 짚어나가는 사이에 오디오는 점차 복잡한 회로를 가지게 되었고, 또한 그에 상응하여 조금씩 음질의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음질의 진화란 당연히 ‘실연에 접근하는 재생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어야만 했다.
소스와 증폭과 재생부분으로 나뉘는 오디오 기기 중에서 재생부분에 해당하는 스피커는 진화가 가장 더딘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뿔형과 돔형 진동판으로 요약되는 다이내믹스피커의 일반적인 형태는 1930년대이래 거의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기신호를 음향신호로 변환하여 공간에 방사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초기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소재의 개발과 더불어 적지 않은 진화가 이루어져 왔다. 스피커 진통판에 콘지나 폴리프로필렌을 필두로 하여 알미늄이나 금, 티타늄, 베릴륨 따위의 금속과 정전형이 등장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까지 진동판으로 쓰이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오로지 좀더 ‘실연’에 가까운 재생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타협 없는 엔지니어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독일 린더만사의 SACD 플레이어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CD와 같은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HDCD와 SACD 및 DVD오디오라는 광대역을 커버하는 새로운 소스기술로 오디오는 또 한 차례 획기적인 음질향상을 꾀하고 있다. 오디오의 진화는 이 시간에도 멈출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실연에 근접하는 재생음’이라는 목표는 오디오 엔지니어링의 향상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이상적인 음질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오디오를 통한 재생음악에 대한 음질평가기준에는 여러 가지 물리적인 성질을 구분하는 평가항목이 따른다. 오디오는 녹음된 소스에 담긴 음악을 재생하는, 악기가 아닌 기계장치이기 때문에 실제의 연주와는 다른 평가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일반적으로 오디오의 재생음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해상력, 분해력, 다이내믹스, 정위감, 임장감, 잔향, 배음, 대역밸런스 따위가 있다. 이러한 평가항목은 연주홀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의 음악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청감상의 이미지들과 연관성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항목들을 규합한다고 해도 재생음악 속에 담긴 음악적인 이미지를 모두 끄집어낼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음악에는 너무도 다양한 이미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디오는 기기마다 물리적인 특성에 따른 음질상의 특징이 있기 마련이어서 위와 같은 일련의 평가항목을 적용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이와 같은 평가기준으로 볼 때 현대의 오디오는 ‘실연에 근접하는 재생음’이라는 목표에 도달했거나 또는 그 기준을 이미 넘어섰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 현대의 오디오가 재생음악이 추구하는 이상에 간단히 도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재생음악을 들으면서 때로는 실제 연주홀에서 느끼는 감흥과는 또 다른 짜릿한 청각적인 쾌감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청각적인 쾌감이 실연에서 느끼는 감동과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음악감상에서 오는 감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어쩌면 연주홀의 가장 좋은 위치에서 연주자의 호흡이나 몸의 기척까지 감지하는 생생한 현장음을 오디오로 듣게 된데 대한 쾌감인지 모른다. 그렇다. 오디오가 선물하는 음악적인 쾌감이란 다름 아닌, 청취자의 위치를 통일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가장 연주홀에 상응하는 가장 좋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음악연주회에서의 청취환경은 실로 다양하다. 음악홀이란 다수의 청중이 아름다운 음악연주를 듣는데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청취자의 위치, 즉 음악홀의 자리 배치에 따라 실연에 대한 청취조건은 저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앞쪽의 청취자와 뒤쪽의 청취자가 듣는 경우와 양쪽 옆과 가운데 자리에서 청취자가 듣는 음악은 많은 차이를 있다. 가까운 곳에서 듣게 되면 연주자들의 호흡을 감지하게 될 정도로 악기의 미세한 표현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뒤쪽에 있으면 그처럼 세부적인 음악적인 표현을 전혀 감지할 수 없이 전체적인 이미지만을 파악할 수 있을 따름이다.
실연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음악적인 청취조건과 비교했을 때 오디오는 위치에 따른 차이를 간단히 해소시키는데 훌륭히 기능한다. 반복하거니와 오디오는 일반적인 가정환경에서 음악을 재생할 때 실연의 감흥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자리를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청취환경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오디오가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라는 소박한 의미를 뛰어넘어 사적인 취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청취환경을 포함하여 음악적인 표현 즉, 청감상의 이미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원하는 청감상의 이미지라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실연의 충실한 재생이라는 오디오 엔지니어들의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디오 재생음악의 평가기준이 되는 위의 항목들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가 오디오 엔지니어링 및 튜닝의 관건일 것이다.
적어도 20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오디오의 재생음악이 지향하는 목표는 바로 위와 같은 항목들을 얼마만큼 만족시키느냐로 모아졌다. 따라서 오디오 엔지니어를 포함하여 평론가나 메니어나 한결같이 이들 항목을 오디오 음질의 평가기준으로 삼아왔고, 누구나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디오가 재생하는 음악이라는 것은 어차피 전자기계라는 물리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형태이고 보니 스펙에 기준하는 평가방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HDCD, SACD, DVD오디오라는 새로운 소스 및 재생장치가 보급되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새로운 소스 및 재생장치는 1980년대 이후 주류를 이룬 CD와 달리 LP의 재생범위에 필적하는 광대역을 커버함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음악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매체라는 데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따라서 오디오 생산업체들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광대역 재생이 가능한 기기를 개발하여 상품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CD음악을 위주로 재생하는 현대의 오디오 기기는 2만헤르쯔라는 임의적으로 커트된 주파수의 상한선을 뛰어넘는 새로운 소스음악, 즉 HDCD, SACD, DVD를 재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가시청 영역이 2만헤르쯔가 그 한계라는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그 이상의 주파수는 불필요하다는 데서 가시청 밖의 초고역을 잘라버렸다. 그러나 초기부터 CD음악은 어딘가 메마르고 답답하다는 견해들이 제기되었다. CD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부묘사에서는 LP를 따르지 못한다는 견해가 차츰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더불어 음악을 듣는 것은 청각기능에 분명하지만 청각을 뛰어넘는 감성의 영역 또는 다른 신체적인 감각은 가시청 주파수 영역 그 이상의 소리에도 반응한다는 사실이 규명되기에 이른다. 그렇다.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를 단순히 귀의 기능으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그 이상의 영역을 감지하고 감득할 수 있다는 이론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간의 신체는 어느 한 부분에 외적 자극이 가해질지라도 그 전체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청각 기능을 벗어난, 다른 신체적인 영역에서 음악에 반응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소스의 출현은 디지털인 CD와 아날로그인 LP의 장점을 함께 갖춘 새로운 소스는 어떨까 하는 소박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소스가 가지고 있는 광대역의 표현력을 표현할 수 있는 오디오 기기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새로운 소스를 재생하는 플레이어는 당연한 일이라 치고, 여기에서 그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스피커이다. 최근의 스피커들은 2만헤르쯔를 간단히 뛰어넘어 3-4만 정도가 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다이아몬드 진동판을 채택한 트위터의 경우 10만헤르쯔까지 주파수대역을 확장시켜 놓고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새로운 개념인 광대역 오디오의 실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오디오 음질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기존의 항목에 기준하고 있다. 해상력이라든가 분해력, 정위감, 다이내믹스, 잔향, 대역밸런스 따위를 중심으로 하는 평가기준에만 한정해온 것이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임장감, 즉 스테이지가 새로운 평가항목에 추가되었다. 악기의 음에 근접하는 재생음도 중요하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전개되는 실연인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투 채널의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스테레오 음 자체도 생생한 현장감을 재연하려는 기술적인 성과물이긴 하다.
그러나 진정한 입체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는 임장감, 즉 스테이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표현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다중 채널 또는 멀티 채널이라는 방식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파이에서 멀티 채널은 비용의 증가 및 운용상의 번거로움 때문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최근에 소개되고 있는 하이엔드 중에는 기기 자체로서 이미 뛰어난 스테이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는 음질 평가 항목에서 스테이지야말로 ‘실연에 근접하는 재생음’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쨌든지 새로운 소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평가기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평가기준이 보태져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새로운 평가기준이라는 것은 임장감과 더불어 음악 이전에 오디오 자체가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소리, 즉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름다운 음악을 재생하는 일 자체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실연에 근접하는 재생음’ 자체가 ‘아름다운 소리’라는 논리를 부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실연에 가까우면서도 이전의 재생음악과는 어딘가 다르게 오디오에서 만들어지는 ‘소리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부품 및 선재가 개발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부품은 다름 아닌 콘덴서이다. 독일 문도르프라는 부품회사에서 개발 생산하고 있는 ‘실버골드’라는 명칭의 콘덴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은과 금을 가미해서 만든 필름콘덴서로서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다. 너무도 유명한 젠센의 ‘실버오일’ 콘덴서에서 이미 은을 소재로 하여 뛰어난 특성의 부품을 만든 예가 있기에 기술적인 문제 자체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닌지 모른다. 어쨌든지 콘덴서에 은과 금을 함께 적용한 예는 문도르프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처음으로 생산했다는 것이 화제가 될 일은 아니다. 단지 은과 금을 소재로 하여 만든 ‘실버골드’ 콘덴서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실버골드’ 콘덴서가 개발되어 사운드포럼에 입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프리앰프를 들고 가 출력신호 쪽의 콘덴서 8개를 모두 ‘실버골드’로 교체했다. 갈아 끼우고 나서 처음 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앰프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닌가 싶으리 만치 소리의 성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아름다운 소리, 즉 미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콘덴서를 잘못 교체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새로운 콘덴서가 본래적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그 소리에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성향의 소리에 깊이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없이 편안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물론 부수적으로 해상력을 포함하여 다이내믹스, 분해력, 잔향, 임장감, 배음, 대역밸런스 따위의 여러 항목의 음질평가 기준에도 만족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아름다운 소리와 더불어 스테이지가 한층 넓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옆과 뒤쪽뿐만 아니라 위쪽으로도 음악이 확산되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은 실로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 새로운 음악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콘덴서에 매료된 이후 탄호이저 스피커도 ‘실버골드’로 교체했다. 그 결과 스피커 유닛이 장착된 배플에서 뒷벽까지 불과 60센티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서 벽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게끔 되었다. ‘실버골드’가 채용된 스피커들은 토인이 없이도 스테이지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기능을 발휘했다. 그러니 ‘실버골드’를 포함하여 오디오파일러, 슈프림, 실버오일 따위의 문도르프 콘덴서로 채워놓은 프리-파워앰프 및 트랜스포트, DAC 등 일련의 사운드포럼 제품들이 가지고 있는 음질성향이 어떠하리란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문도르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콘덴서뿐만 아니라 스피커 선재도 개발했는데 역시 은과 금이라는 귀금속을 사용하여 합금형태로 만든 단심 선이다. 단심 선에다 상아빛 피복을 씌워놓은 아주 간결한 선 두 줄을 하나로 붙인 모양이다. 일반 전선과 다를 바 없는 형태이다. 그러나 귀금속답게 가격은 만만치 않다. 그 가격에 비해 모양은 참으로 볼품없다. 단지 테스트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데도 독자적인 디자인에 의한 단자마저 갖추었으니 상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각적인 불만족과는 상관없이 이 실버골드 스피커 선도 ‘실버골드’ 콘덴서와 유사한 음질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로서 위에 열거한 음질평가 항목들을 수준이상 만족시키면서 역시 아름다운 소리를 지어낸다. 아름답다는 표현 이외에는 달리 생각나지 않는, 훌륭한 음악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사운드포럼에서 수입하여 발매를 시작한 미국의 선재인 ‘LAT’는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고 있다. 파워케이블부터 디지털케이블, 인터컨넥터케이블, 스피커케이블, 그리고 배선재까지 망라하는 ‘라트’는 문도르프의 ‘실버골드’ 스피커케이블과 유사한 음질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파워케이블과 스피커케이블은 사용해보지 못했으나 배선재와 인터컨넥터케이블과 디지털케이블만으로도 충분히 그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경이로운 선재라고 할 수 있다. ‘라트’ 역시 오디오 기기에 적용되는 음질평가 기준항목에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특성을 나타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단순히 오디오 기기를 연결하거나 오디오 기기의 부품일 뿐인 배선재를 어찌 오디오 기기와 동일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 사실, 이런 의문은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라트’는 선재로서의 특성이 워낙 뛰어난지라 어설픈 오디오 기기가 보여주는 음질특성 및 음질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전 대역에 걸친 대역밸런스가 뛰어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청감상의 대역폭은 최고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고역과 초고역의 표현력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바이올린의 고음이 그처럼 매끄럽게 쭉 뻗어 오르는 경우는 초고가 하이엔드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스테이지가 갑자기 확장되고 시야가 명료해진다. 입체적인 표현에 아주 우수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입체적인 표현에는 해상력이나 분해력이 우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덧붙여 가장 관심 있게 들어야 할 부분은 음의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소리라는 것을 문자언어로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소리는 공간에 떠돌다가 사라지는 한시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가치이기에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그린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다만 들판에 끝없이 펼쳐지는 들꽃무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아름다움이 ‘라트’가 만들어내는 소릿결에서 연상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선재에서 도무지 단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단적으로 말해 내가 사용하는 중급 정도의 시스템에서 ‘라트’의 성능은 무지개처럼 황홀한 이미지로 펼쳐진다. 전체적인 음질 수준 자체가 격상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리의 품위에서도 이전과는 완연히 다르다. 프리앰프의 신호부에 ‘실버골드’ 콘덴서를 채용했을 때 느꼈던 소리의 변화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앰프의 음질 자체의 특성이 바뀌어버리는 변화인 것이다.
도대체 선재 하나가 이처럼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오디오 연결 선재가 음질향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한 것은 1980년대 초이다. 그러고 보니까 4반세기가 지난 일이다. 당시에는 오디오 기기를 구입할 때 따라오는 값싼 연결선 이외에 독립적인 케이블 메이커가 몬스터케이블 정도였지 싶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히타치전선에서 리니어크리스탈무산소동선이라는 케이블이 수입되었는데 호기심으로 인터컨넥터 한 조를 구입해서 들어보았다. 군말할 필요 없이 확연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히타치케이블은 구리의 결정구조를 길게 늘어뜨려 전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는 원리로서 그럴 듯하게 들렸다. 케이블 가격은 당시로서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결국 스피커선까지 전체를 히타치케이블로 연결해 들었다. 그 이후 선재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업체들이 생겨나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단품 오디오 가격을 훨씬 상회하는 귀족케이블까지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이름 있는 메이커의 케이블을 몇 종 사용해보았다. 그러나 케이블 메이커나 종류도 많고 가격이 워낙 비싸 일단 어느 선에서 선재의 업그레이드를 멈추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고선재를 구입하다가 자작하는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단순한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메이커를 알 수 없는, 주석을 도금한 동선으로 쓸만한 파워케이블도 만들어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컨넥터용 선재를 자작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벨덴이라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케이블메이커의 컴퓨터용 중고 신호선을 찾아냈다. 이 케이블은 저전압 신호케이블로서 그 만듦새가 우수했다. 알미늄포일로 노이즈차폐처리가 되어 있는 주석 도금 동선이었는데 의외로 대역밸런스가 좋을뿐더러 입체감까지 그려내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즐기기에는 너무 아까워 벨덴 수입업체를 찾아 오디오인드림 동호인의 주선으로 공구까지 하게 되었다. ‘벨덴 9841’이라는 명칭의 이 선재는 문도르프의 ‘실버골드 스피커케이블’과 ‘라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내 시스템의 전체를 장악하는 물건이었다. ‘벨덴 9841’에게 별명을 붙여준다면 ‘빈한한 자의 트랜스페어런트’(음질의 특징과는 상관없이 값의 비교에서)라고 할까.
이제 다시 문도르프의 ‘실버골드’ 콘덴서 및 ‘실버골드 스피커케이블’ 그리고 ‘라트’의 선재들이 가지고 있는 음질의 특성으로 돌아가자. 이들 콘덴서와 케이블이 가지고 있는 음질의 공통적인 특징은 스테이지와 아름다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스테이지는 입체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정위감과도 연관성이 있다. 청각상의 이미지만으로 악기의 위치를 현실적인 공간에 일치시킬 수 있을 때 정위감은 물론 스테이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고가의 하이엔드 시스템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 문제이다.
스테이지에 비해 ‘아름다움’, 즉 아름다운 소릿결이란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다. 소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음악 자체에서 별도로 분리해내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 까닭이다. 음악은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든 간에 오직 청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에 추상적인 가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허공에 떠다니는 추상적인 이미지인 것이다. 그 아름다운 추상적인 가치를 언어로 묘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그런 이미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어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소리이든 간에 그로부터 받아들이는 아름답다는 이미지는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한 느낌을 객관화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문도르프의 콘덴서나 스피커선 그리고 라트의 선재들은 아름다운 아닌,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정위감, 해상력, 분해력, 밸런스, 잔향, 배음 따위의 기존 음질평가 항목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이다. 어찌 보면 음악 자체가 아름다운 소리이므로 음악을 재생하는 오디오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이제까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다름 아닌 콘덴서라는 부품과 부품으로서의 선재 및 기기를 연결하는 선재가 오디오 재생음에 또 다른 형태로 아름다운 소리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최근 영국의 B&W에서는 다이아몬드 트위터(진동판 피막을 다이아몬드 가루로 입힌)를 채용한 800D시리즈를 발표했는데 뜻밖에도 문도르프의 콘덴서를 네트웍에 사용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러한 사실을 통해 B&W도 특성이 우수한 콘덴서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소리 또는 아름다운 소리에 주목하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향후 하이엔드 오디오가 지향하는 음질향상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를 시사하고 있다.
문도르프의 ‘실버골드’ 콘덴서 및 ‘실버골드’ 스피커케이블 그리고 라트의 선재들이 바로 이 새로운 오디오의 표현영역 그 선두에 있는 것이다. (신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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