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오디오 이야기 (8) - 천상의 소리는 긍정의 산물

펜보이 2007. 7. 14. 09:02
 

‘천상의 소리’는 긍정의 산물

 

신항섭(미술평론가)

  

남녘에서 꽃소식이 전해오는가 싶더니 어느 새 서울에도 꽃밭 천지가 됐다. 철이 이른 탓이 아니라,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이 짧아졌기 때문이라는데, 인터넷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홍매화 꽃을 처음 보았을 때 당장이라도 남녘 풍경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눈송이 같은 하얀 차꽃이 지고나면 홍매화를 필두로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그리하여 꽃물결은 거침없이 북쪽을 향해 전진한다. 이런 정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도미노블록이 무너져가는 모양과 다르지 않으리라. 봄은 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꽃이 없는 봄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이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 만발할지라도 그를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봄은 싱겁기 마련이다. 꽃을 보며 그 아름다움을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하는 이들이 있기에 꽃이 피는 봄은 정녕 아름다운 것이다.

현란한 색깔과 모양으로 치장한 꽃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에 현혹되는 이가 없으면 꽃의 존재의미는 반감하고 만다. 다시 말해 꽃의 유혹에 이끌리는 벌과 나비가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은 무의미한 것이다. 이렇듯이 모든 아름다움이란 그를 찬양함으로써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된다. 그런데 천하의 아름다운 꽃이라도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굳은 감성의 소유자에게는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가치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오디오로 재생하는 음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음악이 아름답게 표현될지라도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이에게는 한낱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음악이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통적인 취미는 아니다. 음악이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기능을 한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음악으로부터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음악에 대한 감각이 무디거나 또는 경험 또는 훈련이 부족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아니면 음악의 아름다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이리라. 어떻든 이 세상의 아름다움, 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예술)이란 그를 즐기고 감동을 얻으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몫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디오 음악은 실제의 연주를 녹음이라는 기술로 저장하여 오디오 기기로 재생하는 음악이다. 실제의 연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일회적이기 마련이다. 실제의 연주라서가 아니라, 음악 자체가 시간성에 제약을 받는다. 악기 또는 음성에 의해 연주되는 순간 공간에 방사됨으로써 생명력을 갖지만, 동시에 공간에 방사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연주되는 음악을 저장하여 다시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오디오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디오라는 재생장치는 실제의 연주를 저장했다고 재생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인공적인 소리일 수밖에 없다. 전자기기 장치를 거치기 때문에 실제의 연주가 들려주는 소리와는 엄연히 다른 성질의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하이엔드 오디오다. 물론 어떤 경우라도 오디오로 실제의 소리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오디오 엔지니어와 메니어는 그 근사치에 좀 더 접근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갖 기술력을 동원하여 실제의 연주장에서 듣는 듯싶은 기분을 맛보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의지와 노력의 결과로서 제공되고 있는, 하이엔드 오디오는 어떤 측면에서는 실제의 연주를 방불케 할 만큼 사실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눈을 감고 들으면 흡사 실제의 연주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다.

오늘의 하이엔드는 신소재의 개발 및 특성이 뛰어난 부품 그리고 새로운 회로 기술 덕분에 실연에 육박하는 재생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드시 수 천 만원, 수 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하이엔드가 아니라도 이런 정도 수준의 재생음악을 듣기란 그리 힘들지 않게 되었다. 기기와 주변 액세서리만 잘 조합하면 그야말로 연주회장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실연의 환상에 빠져들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메니어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소모하면서 자신의 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꾸며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오디오 메니어는 어쩌면 음악의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의 귀신에 홀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자신의 집에 음악 홀을 불러들이겠다는 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실연을 방불케 하는 재생음악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음악적인 아름다움, 즉 실연의 감동을 맛보겠다는 목표는 허울일 뿐, 단지 소리의 귀신에 빠져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메니어의 경우 초일류, 초고가의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결코 만족할 리 없으리라 보는 까닭이다.

실제로 수 천 만원에서 거의 일 억 원에 육박하는 시스템을 갖추고도 몇 달 못가 갈아치우는 메니어가 허다하다. 이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소리의 귀신에 홀리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물론 그런 메니어는 나름대로 변명의 소지가 있으리라. 끊임없이 새로운 소리를 들어보는 게 취미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취미일지라도 그것은 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에서 아름다운 재생음악을 듣기 위한 취미치고는 지나친 낭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초일류의 하이엔드에는 가격으로 논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 세계를 탐색하는 일 또한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로부터 정신과 감정의 만족을 얻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양을 체험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본다. 일반적인 시스템과 하이엔드 시스템에는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소리의 질과 음악적인 체험의 차이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그런 하이엔드 시스템을 들여놓고도 거기에 안주하지 못한 채 금세 또 다른 기기를 탐닉하는 행위 그 자체는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재생음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소리에만 현혹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며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에 탓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시간 및 돈의 낭비는 장려할 일은 아닌 것이다.

오디오취미에도 나름대로 어떤 기준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오디오를 통한 재생음악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오디오가 재생하는 음악 또는 소리에 대한 기준이 없으면 성과 없는 바꿈질만 계속될 따름이다. 가령 소스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읽어내는 소리를 좋아한다면 극한적인 해상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를 좋아한다면 빈티지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의 기준을 세운 뒤 그 한 방향으로 따라가면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디오 기기 자체의 소리에 탐닉하는 것보다 음악에 대한 사랑에 있다. 음악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만족할 만한 오디오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적당한 선이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경제적인 여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적당한 선은 결국 개개인의 사정에 맡길 일이다.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타협이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다. 여기에서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다는 것은 일면 긍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터넷의 여러 오디오 사이트를 드나들면서 느끼는 일 중의 하나는 메니어 가운데는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메니어는 여기저기 오디오 사이트를 드나들며, 남의 글에 시비를 걸거나 오디오 기기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트집이다. 이렇듯이 매사에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평생을 가도 마음에 드는 시스템을 조합해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오디오 기기와 접하면서 그 기기가 가지고 있는 단점만을 찾아내려고 해서는 마음에 드는 오디오를 결코 만날 수 없다. 그러기에 필경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소리만을 좇아 방황하게 될 따름이다.

반면에 조그만 장점에도 손뼉 치고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조그만 음질 변화에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 기쁨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런 메니어의 경우 음악과 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 또는 오디오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소리에 대한 분석력이 미흡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오디오를 통해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소리에 다소 둔감한 것이 훨씬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즉, 소리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것도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소리에 예민하면 오디오 기기를 탐닉하는데 열정을 소비하게 되고 시간과 경제적인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까닭이다. 소리에 둔감하더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쉽게 ‘천상의 소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인터선 하나 교체하고도 그 소리의 변화에 행복해 질 수 있다.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다. 오디오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이란 하이엔드 기기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긍정의 사고가 조합해내는 시스템에서 들려주는 소리가 다름 아닌 행복인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두 부류의 메니어 가운데 자신의 목표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이는 당연히 긍정적인 쪽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 그 어떤 오디오 기기로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오디오 메니어의 귀를 만족시킬만한 오디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최고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오디오 기기만을 조합해 놓는다고 해서 모든 메니어가 좋아할 수 있는 소리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일정한 수준의 성능을 가진 오디오를 잘 조합하기만 하면, 수 천 만원에 달하는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오디오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려면 소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소리의 기준이라는 것도 반드시 긍정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만일 부정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면 소리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단점만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점이 부각되는 시스템으로는 결코 만족할 리 없다.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