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오디오 이야기 (10) - 디자인 없는 오디오는 백년하청

펜보이 2007. 7. 21. 11:06

 

                                                                                삼성에서 만든 하이엔드 프리앰프 "엠페러"

 

 

디자인 없는 오디오는 백년하청

 

신항섭(미술평론가)
 

한국의 기업의 문화의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것도 놀랄 만큼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상품을 파는 기업운영방식에서 문화를 파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무역시장에서 한국의 상품은 어느새 일류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류 삼류로 인식되던 한국의 상품이 촌티를 벗어 던지고 마침내 세계 일류메이커들과의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한국 전자제품이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는, 마치 승전보와 같은 소식들이 줄을 잇고, 한국 전자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한국상품이 일류로서의 대접을 받는 것은 요원한 일로 여겼던데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처럼 한국상품이 세계무대에서 일류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데는 상품의 기능적인 우수성도 한 몫을 하지만 그보다는 외형, 즉 세계 수준에 다가선 디자인의 향상과 무관하지 않다. S사의 휴대폰은 세계적인 명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유명 디자인지에 선정될 정도가 되었다니까, 디자인 선진국으로서의 진입은 이제 시간문제인지 모른다. 실제로 이 회사는 현대디자인을 선도하는 곳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 밀라노에 디자인회사를 설립, 최근에는 회장이 독려하는 차원에서 현지를 방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기업 오너들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 세계적인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유명브랜드들은 한결같이 미려하고 세련된 독자적인 디자인의 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 유명브랜드들은 디자인을 팔아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적인 디자인 개념으로 세계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면 상품의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의 구매자들은 상품의 질적인 면보다는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달리 보면 상품의 질적인 수준의 차이가 그만큼 좁혀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아무리 내용적으로 우수한 상품을 만들지라도 디자인에서 구매의욕을 자극할 수 없으면 부가가치를 높이기는커녕 명품의 대열에 합류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한국 사운드포럼의 최신 프리앰프 "P-9"


한국의 기업형 오디오산업은 한 때 중저가 시장에서 각광을 받았던 적이 있다. 물론 하청기지로서도 큰 몫을 차지하면서 경제성장에도 기여한 바 크다. 우수한 기술력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 뒷받침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오디오산업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 국가들의 성장세에 밀려 사양산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오디오시장마저도 외국제품들로 넘쳐나는 상황이 되었다. 하이엔드로 가면 시장상황은 더욱 나빠서 외제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하면 역시 디자인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기술력이나 자본에서 여력이 있는 상황에서도 디자인 개발에 소홀함으로써 일류상품으로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다. S사에서 하이엔드로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수립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독립회사를 설립한 일이 있다. 세계적인 오디오엔지니어에게 설계를 맡기는 형식으로 하이엔드 제품을 내놓았는데, 정작 시장에서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이처럼 세계 하이엔드시장을 겨냥한 제품이 출시를 하는 시점에서 공교롭게 IMF와 겹치는 바람에 한파를 맞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일단 국내시장에서 기본적인 수량마저 소화하지 못한 상태인데다가 막상 제품을 내놓고 보니 한국의 신생오디오에 대한 세계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세계 하이엔드시장을 리드하는 기존의 유명제품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 또는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의 지극히 보수적인 마케팅 분야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내용적인 평가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세계 하이엔드시장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는 간단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한국 오디오 디자이너 유국일의 작품


이는 한국오디오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의 하나일 따름이다. S사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A사는 개인회사로서 오늘도 세계 하이엔드시장에 한국오디오의 성가를 높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력의 부족에다가 불경기 여파로 인한 위축된 한국오디오시장이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유명 오디오쇼에 참가하는가 하면 권위 있는 오디오잡지에 리뷰가 올라오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나 회원을 대상으로 공구를 해야 할만큼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의 제품은 해외 오디오잡지의 리뷰 대상이 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기술력이나 가격에서는 일단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숫자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 회사의 일부 제품의 케이스디자인은 외국의 오디오디자이너 및 한국의 오디오전문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일단 ‘때’를 벗었다는 평을 받고는 있다. 그런데도 세계적인 하이엔드 제품에 익숙한 한국의 오디오메니어들에게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아직은 브랜드명을 알리는 정도의 단계에서 머물고 있을 뿐, 확고한 판매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상황인 듯싶다. 한마디로 메니어들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혹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인지 모른다.

 

                        

                          한국 실바웰드의 프리앰프 "아프로디테" 오디오전문 디자이너 유국일의 작품


또 A사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M디자인회사는 인클로저를 메탈로 제작하고 있는데,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에 투웨이 메탈스피커를 출품하여 디자인 부문 “이노베이션상”을 수상하는 개가를 올렸다. 특히 최근에는 독일의 유명 유닛메이커와 손을 잡고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3웨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유닛메이커에서는 메탈 인클로저에 장착할 특주품을 기획 생산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이 회사는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다고 하는데 귀추가 주목된다. 이 회사는 국내 하이엔드 업체가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시장을 넘어 곧바로 세계시장에서 진가를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것은 보다 좋은 조건을 갖춘 오디오 최대의 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한국의 하이엔드오디오 디자인의 실정이 이런 정도이다. 그렇다면 세계하이엔드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유명 오디오메이커들은 어떤지 국가별로 살펴보자.
오디오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은 영국을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덴마크,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오디오 강국의 제품들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오디오디자인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데 있다.

 

 미국 "윌슨오디오"의 스피커


미국은 거대한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실질적으로 세계하이엔드시장을 리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제일의 경제대국답게 모든 분야에서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부자도 그만큼 많다는 얘기인데, 하이엔드시장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실제로 웨스턴일렉트릭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오디오산업은 매킨토시, JBL, 마란츠(현재는 일본), 알텍, EV, 피셔 등이 만들어 놓은 전통 위에서 마크레빈슨, 크렐, 첼로, 스레숄드, 패스, 오디오리서치, 볼더, 캐리, 와디아, 제프롤랜드, 에글스톤웍스, 스펙트럴, 아발론, 윌슨오디오, 호블랜드, VTL, 밸런스드오디오, 비올라로 이어지는, 거명하기도 숨찰 만큼 수많은 유명 하이엔드가 경쟁적으로 존재한다.

 

                       미국 매킨토시사의 파워앰프

 

이들 미국의 하이엔드제품을 나열하게 되면 무언가 손에 잡힐 듯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맨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물량투입에 따른 외형상의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기기에 따라서는 그 크기만으로도 압도될 정도이다. 이처럼 오디오의 크기가 커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으리라 보는데, 무엇보다도 미국의 주거공간이 크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일단 거대소비시장은 있으니 물량투입으로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크기를 부추겼음직하다. 오디오는 단순히 아름다운 음악을 재생하는 전자기계라는 실용적인 문제를 떠나 취미성이 강한데다가 실내공간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아름다워야 한다는 요구를 물리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미려한 디자인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외형에 비중을 높이면서 자연히 크기가 커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하이엔드는 이러한 현실적인 요건 또는 필요성에 의해 형태가 대형화의 길을 가게 된 셈이다. 

 

           

                                                                      미국 JBL사의 최신 스피커 "에베레스트"


그런가 하면 미국의 하이엔드는 대체로 그 모양이 단순하여 힘차고 우직하다. 이는 어쩌면 거대한 대륙적인 기질에서 나오는 감각인지 모른다. 물론 크기가 커지다 보니까 장식성보다는 단순성을 찾게 되었고 단순함 속에서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장엄한 대자연을 극복해가면서 개척자적인 역사를 일군 미국인의 의식세계에는 그러한 정서가 담겨 있는 것이다. 거대한 대륙인으로서의 기질 및 정서가 하이엔드의 외형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영국 코드사의 DAC

 

영국에는 오랜 전통만큼이나 수많은 군소 오디오메이커가 있다. 빈티지의 대명사인 굿맨을 비롯하여 탄노이, 쿼드, 로저스, 하베스, 케프, 스펜더 B&W, DCS, ATC, 코드, 뮤지컬피델리티, 와피데일, 윌슨베네시, 셀레스천, 모니터오디오, 오디온, 린, 크리크, 메리디언, 네임오디오, 사이러스, 레가 등의 메이커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오디오 메이커는 대다수가 ‘영국적이다’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영국 오디오의 디자인은 크기가 작고 간결하다는 이미지로 함축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단출하다고 할만큼 간명하다. 다시 말해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최소한의 기능성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작은 크기에 기능적인 장치를 많이 넣는 것도 디자인에서는 당연히 피해야 할 덕목이지만 영국의 경우는 실용성을 우선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영국 탄노이사의 스피커 웨스트민스터 로열     

 

                                                     

                                                               

                                                               영국 쿼드사의 진공관 파워앰프

 

더불어 크기가 작다는 것은 불필요한 기능을 추가하여 값을 올리기보다는 오디오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기능, 즉 재생음악에 필요한 장치로서의 가치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외관은 그다지 멋스럽다고 할 수 없다. 메이커에 따라서는 마치 장난감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크기가 작으면 아기자기한 맛이 강조되기 마련인데, 이는 주거공간과도 관계가 있으리라고 본다. 미국과 대조되는 조그만 주거공간에 알맞은 형태, 즉 현실적인 크기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메리디안사의 최신 CD플레이어

 

그러면서도 디자인의 이미지는 보수적인 냄새가 짙게 풍긴다. 탄노이 스피커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동축형이면서 통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대형 인클로저를 사용하는 이 회사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코드의 경우처럼 크기나 디자인에서 물량투입과 함께 보다 현대적인 세련미를 지향하고 있는 메이커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메이커가 아직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다.

 

 프랑스 자디스사의 진공관 파워앰프


프랑스는 생각처럼 오디오메이커가 많지 않다. 자디스, 마이크로메가, 메트로놈, JM랩, 코라, 시멜, 엘립송, 카바세, 오디오에어로 정도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오닥스라는 스피커 유닛 제조업체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이웃 영국에 비해 완제품 오디오메이커들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나라답게 오디오 디자인에서는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편이다. 가령 자디스사의 ‘유리스미’라는 대형 스피커시스템은 메탈과 나무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발상이라든가 전통적인 스피커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의 개념으로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프랑스 오디오는 어딘가 다르다. 예술의 도시 프랑스를 염두에 둔 선입견이 아니더라도 개성이 넘친다. 그 개성은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디오의 기능성을 중시하면서도 시각적인 조화 및 통일성을 중시함으로써 일관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분명히 현대적인 감각이 반영되고 있다. 오디오 고유의 기능성을 바탕에 두면서도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고려한 형태 및 색채이미지를 교묘히 조화시키는 감각이 특출한 것이다.

                                                

독일 MBL사의 프리앰프 

 

독일에는 텔레푼켄, 노이만, 클랑필름, 이소폰, 아이피시, 지멘스 따위가 여전히 빈티지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듯이 오랜 오디오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부르메스터를 필두로 아방가르드, 오디오넷, 아인슈타인, 엘락, 저먼피직, ALA조단, MBL, 어쿠스틱아츠, 망가, 아카펠라 따위의 하이엔드 기기가 자리한다.

 

 

                                                                                                   독일 아방가르드사의 스피커


독일 오디오를 말할 때는 여전히 장인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하는 기계적인 정밀도 및 안정적인 작동, 그리고 실용적인 기능성 따위가 연상된다. 무엇보다도 독일의 하이엔드는 저마다 독자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적어도 자국 오디오메이커끼리는 비슷해서는 안 된다는 투철한 기업의 윤리에 충실하다는 인상이다. 그러다 보니 독일의 오디오는 어디에서도 눈에 띈다.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기 어려운 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개성은 역시 기술적인 완성도와 무관하지 않다. 메이커마다 독자적인 관점에서 오디오를 만든다는 철학적인 입장이 명확히 읽혀지는 것이다.
어떤 제품을 보더라도 디자인에서 일단 신뢰를 준다. 눈가림 식의 가벼운 디자인보다는 무게감과 기계적인 견고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인적인 냄새가 풍긴다고 할까. 거기에다가 가능한 한 불필요한 요소는 줄인다는 단순성을 의식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는 힘차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간결하며 솔직하다는 인상이다. 이는 내부와 외형을 일치시킨다는 견실한 디자인의 개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본 아큐페이즈사의 파워앰프와 프리앰프


일본은 오디오 산업이 서구에 비해 늦은 편이지만 기술적인 면이나 디자인에서 일본다운 개성을 실현하고 있다. 일본에는 아큐페이즈를 비롯하여 마란츠, 럭스먼, 티악, 덴온, 소니, CEC, 파이오니아, 선오디오, 오디오노트, 나카미치 따위의 크고 작은 오디오메이커가 많다. 일본의 오디오는 무엇보다도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보급형 오디오를 통해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앞선 전자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면서 수요를 창출하는 현대기업의 속성을 만들어나가는데 일본이 선도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오디오디자인은 대중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으로 갔다. 가령 시각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다채로운 기능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술력을 과시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디자인의 전략은 보급형 오디오를 가정으로 확산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기에 일본 오디오는 적어도 디자인의 기본 개념에 관한 한 대중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일부 하이엔드로 알려진 메이커들조차 금세 일본제품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다시 말해 기술적인 과시와 연관성을 가진 기능의 다양화 및 장식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독일에 필적하는 기계적인 완성도 및 섬세한 마무리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샴페인골드와 같은 색상을 선호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각적으로 정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는 탐미적인 일본인의 미적 감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물량투입을 할지라도 미국적인 무게감이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 소너스 파베르사의 스피커 "스트라디바리"

                                                            


이탈리아는 오디오 분야에 관한 한 후발주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소누스파베르를 정점으로 하여 차리오, 유니슨리서치, 그라프, 디아파송, 오디오아날로그 등 메니어라면 누구나 알만한 메이커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세계 하이엔드 시장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년이 채 안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세계시장에 아주 빠르게 진입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현대디자인 강국으로서의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다. 이탈리아 오디오 디자인은 기존의 성냥갑 형태의 직선적인 단순구조를 벗어나 미려한 곡선을 도입한다던가, 금속과 나무의 결함 따위의 새로운 발상을 도입했다.
특히 스피커의 경우에는 원목을 사용하고 짜맞춤 기법을 도입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이는 수공예적인 완성도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공방의 전통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이다. 오디오가 가지고 있는 상업적인 이미지를 탈피하여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따라서 다른 국가들이 따를 수 없는 미려한 형태미를 추구함으로써 오디오를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오디오의 디자인은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수공예적인 완성도, 낙천성, 낭만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어쩌면 삶에 대한 열정의 산물인지 모른다. 로마로 상징되는 오랜 문화적인 전통에서 배태된 예술적인 감각 및 장인적인 기질이 전자기계를 차가운 금속의 이미지에서 예술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스위스 골드문트사의 턴테이블 <아직 시판을 하지 않은 신개발품>


스위스는 정밀기계 및 금속공예의 고향으로 상징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을 배반하지 않으려는 듯이 오디오 분야에서도 정밀기계에 능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스위스에는 골드문트를 비롯하여 리복스, FM 어쿠스틱, 토렌스, 나그라, 피에가, KR 엔터프라이즈 등 하이엔드 중 하이엔드로 주목받는 명문가들이 줄을 잇는다. 스위스 오디오디자인의 특징은 역시 기계적인 완성도 및 정밀함이다. 시각적인 화려함 대신에 단순하고 간결한 디자인이면서도 그 형태적인 완성도에서는 역시 최고라는 찬사를 비켜가지 않는다. 스위스 오디오는 정결함과 단호함 그리고 기품을 중심에 두는 디자인 개념을 추구하는 듯싶다. 어쩌면 먼지 한 톨 없는 듯이 깨끗한 청정의 스위스 풍경과도 일맥상통하는 시각적인 이미지인 것이다. 어느 메이커나 이러한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무엇이든지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국민적인 자존심에 근거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으로서의 존재성을 알리고 또 살아나가기 위한 방편으로서 다른 국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어떤 결연한 의지가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캐나다 클라세사의 앰프세트

 


캐나다는 신진 오디오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클라쎄를 시작으로 오라클, 심오디오, 소닉프론티어, 베리티오디오, 포커스오디오, 브라이스턴,매그넘 등이 버티고 있다. 후발주자답게 오디오디자인은 현대적인 멋으로 치장하고 있다. 캐나다 오디오는 국가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빠른 시간 내에 하이엔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북미대륙이면서도 청정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의 오디오 이미지도 이러한 영향을 뿌리치지 못하는 듯싶다. 캐나다 오디오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며 첨단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어떤 면에서건 새롭다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경향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힘이 느껴진다. 세부적인 표현보다는 전체를 보면서 이미지의 통합을 모색하는 식이다.
파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음에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고유의 형태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물론 소리와 디자인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디자인의 새로움은 결과적으로 소리에도 어떤 식으로든지 반영된다는 것은 경험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되는 점이다.

 

                                                                                              덴마크 그리폰사의 최신 프리앰프


덴마크는 소국이면서도 역시 오디오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폰, B&O, 다인오디오, 달리, 보우, 엘탁스, 단탁스, 오디오벡터, 덴센, 오토폰, 야모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메이커에서 알 수 있듯이 덴마크의 오디오는 앰프류보다는 스피커에 강세를 보인다. 목공예에 능한 문화적인 전통을 살린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하이엔드보다는 보급기에 주력하는 인상이다. 디자인도 특이한 이미지로 어필하기보다는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지점을 지향하는 듯하다. 따라서 내용적으로 견실하다. 외화내빈, 즉 외연에 치중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함으로써 오디오의 본질에 접근해가려는지 모른다. 이는 결과적으로 실용성을 중시한 결과인데, 합리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리폰이라든가 B&O는 첨단 디자인을 지향한다. 이들 메이커는 덴마크 오디오산업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세계적인 첨단의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새롭다는 차원을 넘어 예술적인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우연한 일은 아니다.

 

                                                                                          중국 샨링사의 SACD 플에이어


그리고 최근에 모든 산업분야에서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오디오산업은 OEM기지로서의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세계제패를 꿈꾸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은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샨링과 같은 메이커에서 볼 수 있듯이 디자인에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중국 오디오의 디자인 성향은 수천년의 화려한 문화적인 전통 및 역사를 지닌 국가답게 자못 화려하다. 필요이상의 장식적인 기능을 추가한다던가, 시각적인 화려함을 좇는 인상이다. 일단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는 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지 모른다. 따라서 결코 세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다는 손재주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만 받아들인다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물론 소리의 질적인 내용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디자인만을 놓고 본다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세계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다름 아닌 유구한 문화적인 전통에 있다.
한국은 반도국가이다. 그리고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선조들이 한반도를 금수강산이라고 표현했듯이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수려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및 강수량에서 알 수 있듯이 천혜의 지리적인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한국인은 가무를 즐기는 낙천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어 감정표현이 명확하고 활달하다. 어쩌면 한국인 스스로가 냄비기질이라고 말하는 민족적인 습성이라는 것도 절기를 놓치면 소출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농업민족으로서의 특징인지 모른다. 다시 말해 계절의 구분이 명확함으로써 정해진 철에 파종을 하고 수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환경조건이 매사를 ‘빨리’ 처리하는 습성을 키웠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이 낙천적이면서도 활달하고 성급한 성격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인 한국의 미술 역시 이러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러면서도 이웃한 중국의 문화를 모태로 하게 된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도국가의 문화는 대체로 중계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대륙으로부터 들어온 문화가 토착화하기보다는 유사문화로 남겨지면서 다른 곳으로 흘러나가는 중간기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는 바다의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생긴 문화적인 현상 또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반도의 문화 역시 그러한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한국의 문화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 중국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온 문화는 부분적으로 토착화하면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러한 형태의 문화의 전파경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의 문화를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기교의 극치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한국의 문화는 기술보다는 본질을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는 심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본질이라는 것은 기술적인 완벽성이나 완성도 높은 마무리보다는 미완의 미라고 할 수 있다. 미완이라고 해서 미숙한 것은 물론 아니다. 예술적인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기술의 극치나 높은 완성도로서 성취할 수 없는 그 중간 형태의 가치를 중시한 것이다. 이는 한국 중국 일본의 도자기라든가 기와집의 형태에서 충분히 비교되는 점이다.
오디오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의 디자인에서 바로 이와 같은 한국적인 그리고 한국의 민족적인 특성을 반영함으로써 독자적인 디자인의 개념을 산출하고 정립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