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오디오 이야기 (9) - 오디오를 꽃으로 만들 것인가?

펜보이 2007. 7. 16. 22:49

 

 오디오를 꽃으로 만들 것인가?

 

신항섭(미술평론가)


꽃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꽃잎의 모양이나 색깔, 꽃 한 송이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균제 비례, 그리고 여러 송이가 함께 했을 때의 조화 및 통일성 따위가 그 기준이 된다. 이러한 기준들은 미술에서 말하는 조형적인 요소들인데 꽃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데도 역시 유효하다. 지구 곳곳에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수많은 꽃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이다. 크던 작던 꽃들은 자마다 고유의 형태미와 색깔로 치장하고 있다. 뜯어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란 없다. 그런 꽃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고 인간은 꽃을 통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누린다. 그 얼마나 복된 일이랴.

꽃과 더불어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하는 여성 또한 같은 기준으로 그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성은 꽃과 달리 저마다 모두 아름답지 않다는데 비극이 있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와 같은 미인경연대회가 열리는 것도 여성의 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미인을 통해 역시 시각적인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인간이 즐기는 시각적인 즐거움의 대상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시각예술인 순수미술이 그러하며 그로부터 파생된 상업미술 또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공산품의 대다수는 어떠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든지 간에 그 외형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한다. 그런가 하면 자연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찬찬히 뜯어보면 자연을 이루는 물상은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물상 하나 하나는 버릴 것이 없다. 고유의 형태 속에 아름다움이 빠짐없이 깃들이고 있는 까닭이다. 참으로 조화로운 세상의 이치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처럼 아름다운 존재들로 넘치는 세상에서 남성은 유별나게도 여성의 미모를 탐한다. 같은 족속으로서 일상적으로 가까이하는 상대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소유욕도 함께 하기 때문일텐데, 아무튼 미인에 대한 호기심과 탐욕은 도를 넘고 있을 정도이다. 단순히 수놈의 생리적인 욕구의 발로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명쾌하지 않은 점이 있는 것이다. 그 석연치 않음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미적 감수성 때문이다. 소유욕과도 다른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기는 탐미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반드시 남성에게만 주어진 권능은 아니다. 여성 또한 근육미가 넘치는 남성의 아름다움에 현혹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다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미인일지라도 정작 매일 함께 하는 처지가 되고 보면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 및 관심도 점차 희박해지게 된다.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절세가인이라고 할지라도 가까이 두고 보면 이내 심드렁해지게 된다. 더구나 미인의 얼굴이 제아무리 꽃처럼 아름답다고 해도 요모조모 뜯어보면 어딘가는 결점이 숨어있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미인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멀찍이 떨어져서 그저 단지 눈으로만 바라다보아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야만 결점이 드러나지 않고 진력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디오 음악을 들으면서 간혹 꽃과 미인을 떠올린다. 오디오를 꽃이나 미인처럼 여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디오의 외양, 즉 패널 디자인을 보면서 메니어마다 다른 감정을 갖기 마련이다. 인간의 기호 및 취향은 저마다 달라 같은 꽃을 보더라도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듯이 인간이 만든 오디오 기기에 대한 인상 및 그 평가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따라서 오디오 제작회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전면에서 바라보이는 패널 디자인인지 모른다.

디자인의 호감도가 상품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현대마케팅 전략에서 정설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자본의 여력이 있는 회사일수록 디자인팀을 따로 두고 상품의 외양으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패널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디자인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는 오디오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일부 제작회사들은 아예 외양 디자인을 전문회사에 맡기기도 한다.

오디오 기기는 외양 디자인보다는 디스크라는 음원을 재생하는 기계로서의 기능성과 음질이 우선한다. 오디오 기기의 생명은 아름다운 음악을 실연처럼 재생해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듯 싶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다. 음질을 향상시키는 일이야말로 오디오 제작자의 절대적인 목표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음질이 디자인에 밀리는 일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 구매자들이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인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오디오 업계는 거꾸로 디자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의 오디오업계에서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제작자의 감각에만 의존하거나 기성제품을 모디파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국제품과의 경쟁에서 외양이 절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는지 디자인에 관심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패널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케이스에 고급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디자인 비용에다가 재료비까지 상승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오디오 제품 자체의 가격도 높아지고 있다. 새로 오디오를 장만하게 되는 메니어들은 이제 기기 값에다 디자인 값을 얹어 주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디자인 및 외양의 고급화에 따른 비용을 고스란히 메니어들이 떠 안게 된 셈이다.

이런 추세가 일반화되면서 오디오 메니어들은 걱정 한 가지가 늘어났다. 음질만을 고려하던 이전과 달리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일반적인 오디오 메니어 입장에서는 음질과 디자인을 놓고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오디오는 음악 재생장치이므로 충실한 음질재현만을 고려한다면 외양 따위는 당연히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에 고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디오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각적인 면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오디오는 취미성이 강한 상품이어서 보고 만지는 시간이 많은 까닭이다. 더구나 거실이나 안방 등 가족들이 함께 하는 공간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 아닌 가족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오디오 기기를 선택할 때 디자인과 음질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물론 음악을 위주로 하는 진정한 오디오 메니어라면 이런 문제는 전혀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일단 음질이 좋은 쪽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디자인에 우선하는 선택이 되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음질이 나은 쪽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

오디오 메니어의 이상은 일단 실연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리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하지만 세상에 자신만의 취향에 맞는 오디오 기기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설령 주문생산을 한다고 해도 그 엄청난 비용부담은 어찌 할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오디오란 부품 하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데 그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오디오 기기는 스피커, 앰프, 시디 및 엘피 플레이어, 튜너 따위의 기기에다가 기기 간의 연결선 및 전원선 등 다양하다. 따라서 이처럼 많은 기기는 제작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를 만들어 가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한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니어들은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오디오 음악생활은 개인적인 취미인 탓이다. 취미생활을 버리지 않는 한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고행의 길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인터넷을 통한 오디오 메니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사이트를 통해 오디오 기기를 공동제작하거나 공동구매를 하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재미있다. 오디오 기기의 외형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게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처음 개발자의 디자인 개념이 이리저리 찢기면서 종국에는 이상한 형태로 마무리되는 일도 있다.

오디오 사이트를 이용하여 공제나 공구에 참여하는 메니어들은 실로 다양한 계층이 공통의 취미생활을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러기에 연령이나 직업, 경험 그리고 취미가 저마다 다를 터인데 사물의 형태미를 분별하는 미적 안목 또한 어찌 같을 수 있으랴. 공제나 공구 과정에서 회원들의 의견을 규합하고 투표를 실시하여 어떤 특정의 디자인을 결정하여 제품화하는 절차를 거칠 것이다. 하지만 그 오디오 기기가 과연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다. 대개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서툰 사공이 많은 탓이다. 디자인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의 눈과 마음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비전문가가 만든 기기라고 할지라도 정해져 있는 기능을 중심으로 외양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 다만 기왕 새로 제작되는 기기라면 음질에 상응하는 새로운 디자인, 즉 현대인의 주거공간에 어울리는 형태의 외양은 응당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오디오메니어 중에는 분명히 음질보다 디자인을 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들이 있다. 음질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경우일지라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보기에 멋드러진 디자인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적어도 디자인만 번지르르하고 음질은 영 신통치 않은 외화내빈이 아니라면 말이다.

꽃을 보고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의 하나이다. 이는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아름다움에 무감각한 경우는 없음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오디오의 선택기준에서 외양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꽃의 색깔에만 현혹되면 그 형태미를 알 수 없듯이, 오디오 기기의 외양에만 너무 관심을 쏟다보면 정작 음질에서 손해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신항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