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평

미술시평 (10) - 공정한 미술대전 운영, 미협의 내부정화부터

펜보이 2007. 7. 21. 09:43

 

공정한 미술대전 운영, 미협의 내부정화부터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사회에는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있다.  어느 곳에나 계급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평등을 이상으로 여기면서도 계급이 없는 곳이 없다.  국가기관은 물론이요, 군대, 개인회사 심지어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난 순수한 모임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설령 단순한 친목 성격의 자율적인 소규모 모임이라고 할지라도 대표자가 선출됨과 동시에 계급화하고 만다.  단지 회원을 대표할 뿐이라고 하지만 사회에서는 어쨌든지 평회원과 다른 그 대표성에 맞춰 대우를 한다.  계급이란 사회생활에 따른 질서를 위해 상하관계를 구분 짓는 즉, 사회적인 신분 및 위치를 결정하는 인위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계급이란 단순히 사회적인 규율과 질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이 인격의 역할을 하게 되면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상하의 개념으로 바뀌면서 그야말로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약육강식을 위한 논리적인 근거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사회에는 공익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주는 사회적인 의미의 상찬이라고 할 수 있는 훈장이라는 것이 있다.  국가에서 주는 훈장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것이다.  국가발전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사회적인 의미의 명예를 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국가가 아닌 일반사회단체에서도 훈장과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국가기관 및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경시대회 및 경연대회가 그것인데 여기에서는 일정한 규칙을 정해 우열을 가늠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을 수여한다.  상이란 어쩌면 개인적인 노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기에 국가에서 주는 훈장과 유사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경시대회 및 경연대회의 수상자는 훈장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명예가 따르게 마련이다.  적어도 그와 관련된 사회에서만큼은 이른 바 수상자로서의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수상경력은 사회활동을 하는데 음양으로 큰 도움이 된다.  인격화한 계급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훈장 및 수상경력이 곧바로 계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계급에 근사한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미술대전과 관련한 금품수수 행위로 한국미술협회 전,현직 임원 25명이 검찰에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계급적인 효과를 얻으려는 일부 미술인들의 행각에서 비롯되었고 볼 수 있다.  미술대전은 알다시피 공모전이다.  만20세 이상의 대한민국 남녀이면 미술을 전공했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구든지 응모할 수 있다.  미술대전은 과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맥을 같이 하면서 최고 권위를 지닌 공모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술대전에서 대상 및 우수상 그리고 특선 이상의 수상자들은 매스콤의 각광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데뷔를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미술전공자이든 독학자이든 작가로 인정받는데는 가장 빠른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로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미술대전의 수상경력은 필수적인 요건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수상경력 그 자체만으로 작가로서의 자격여부에 대한 시비나 의혹을 간단히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대전 입상이 미술인들에게 이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민반관 단체가 주최하는 유일한 공모전이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 미술협회는 반민반관 단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임원선거 및 미술대전 따위의 중요한 사업의 운영은 자율적으로 행하지만 정부산하 단체인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운영자금 대부분을 보조받고 있다.  이 운영자금이 협회 살림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회원들로부터 연회비를 받아 협회살림에 보태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마련한 운영자금은 미술대전 및 회원전과 주요 국제전 참가 보조비 그리고 협회 내부 운영비로 쓰이게 된다.

  이렇듯이 운영자금만을 놓고 보자면 협회 이사장이 된다한들 아무런 물질적인 이득을 취할 수 없다.  미협 이사장 개인적으로는 판공비보다도 더 많은 지출이 필요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미협 이사장 선거 때만 되면 적지 않은 선거비용을 쓴다고 한다.  돈을 써서라도 미협 이사장이 되겠다는 데는 그에 상응한 대가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 세간의 의혹이다.  하지만 미협 이사장이 되겠다는 마음 이면에는 그런 사사로운 이익이나 어떤 대가 이전에 미협 이사장이라는 직책이 미술인 단체의 대표성을 뛰어넘어 사회적인 의미의 계급으로서 대접받는데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미협 이사장은 문화예술과 관련한 국가적인 행사에 미술인의 대표로서 빠짐없이 참석한다.  이는 미술인의 대표성, 즉 계급에 대한 사회적인 예우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술대전은 또 다른 형태의, 미술인들에게 계급을 부여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미술대전 수상자 및 입선자들은 일단 작가로서 인정받는 자격증 하나를 따는 일이나 다름없다.  가을에 열리는 미술대전의 구상부문의 경우 한국화 및 유화 그리고 조각 부문에만 2천여 점 내외의 작품이 출품되어 이 중에서 십분의 일 조금 넘는 정도가 입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된다.  숫자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수상에 상관없이 입선에 드는 그 자체만도 힘들다.  그러기에 입선작가가 되는 일만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대학 및 대학원에서 전공을 한다고 해도 작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개인전을 열거나 또는 상업화랑으로부터 초대를 받아야만 하는데 현실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반면에 미술대전에서 특선 이상의 수상을 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손쉽게 작가로서 대접받는 길이 열리게 된다.  작품의 내용 및 수준을 불문코 일단 믿을만한 작가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대전이 사회적으로 그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미술인들이 미술대전에 응모하는 과정을 보면 맹목적인 데가 없지 않다.  한 작가로서 데뷔한다거나 계급적인 지위를 얻기 위한 기회로 삼는 일,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입상을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어쩌면 이번 미술대전 심사과정에서 발생한 금품수수도 관련자들이 검찰에 입건된 사건도 사회적인 인증제도처럼 인식되고 있는 입상경력을 만들기 위해 저질러진 악습의 단면인지 모른다.

  미술대전이나 과거 국전에서 부정한 심사과정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관행처럼 여기는 미술계 풍토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미술계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한국 미술인을 대표하는 미술협회 임원이나 협회에서 임명하는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이른바 미술계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여기에는 대학교수는 물론이려니와 과거 국전 및 미술대전에서 수상을 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미술계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작가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술계 안팎에서는 미술대전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기돼온 일이다.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부정으로 얼룩진, 불공정한 심사가 계속된다면 미술대전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대전이 없는 미술협회 또한 더 이상 존속해야할 필요성도 명분도 없다.  그렇다.  얼어붙은 미술시장으로 인해 가뜩이나 작가들의 생계가 막막한데다가 이처럼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데 앞장서고 방조하는 미협이라면 더 이상 존재의미를 찾을 수 없다.  미술대전으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면 당연히 없애야 한다.  사건 자체와 미술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여파만을 놓고 본다면 차라리 미술대전은 없는 것이 낳다.

  이러한 여론에 힙입어 마치 부정의 온상처럼 보이는 미술대전이 폐지된다고 가정하자.  이번 사건에서 희생당한 입장에 있는 많은 작가 및 지망생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오직 미술대전 하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작업을 해온 많은 이들은 한 순간에 목표를 상실한 채 심한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고 말 것이다.  작가로서 데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차단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미술대전은 지역작가 또는 비전공자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개인전을 열 수 없는 작가들에게는 사회적인 계급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해도 틀림없다.  이들에게는 미술대전이 아무리 부정으로 얼룩지고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분명한 목표이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는 미술대전은 심사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인 피해가 올지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애증의 대상인 것이다. 

  물론 유수의 신문사 및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유사한 형태의 공모전이 있으며, 조형적인 이념에 의해 만들어진 각 미술단체의 공모전, 그리고 정체가 모호한 단체의 공모전 등 민간 단체의 공모전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  하지만 미술대전을 제외한 민간 단체의 공모전은 사회적인 권위라는 측면에서는 미술대전에 미치지 못한다.  중앙에서 열리는 소수의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은 나름대로 성격을 명확히 하면서 어느 정도 객관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술대전에 비해서는 역시 비중이 약하다.  그나마 중앙의 언론사들이 주최하는 공모전은 운영방식에서 합리적인 방식을 찾아냄으로써 심사와 관련해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회적인 감시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사 특유의 분위기 탓이기도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미술대전에 비해 비중이 낮으므로 이른 바 정실심사 및 금품수수 따위의 부정적인 행위가 끼어들 소지가 적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미술대전을 어찌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참에 아예 미술대전을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데 되면 과연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혹여 미술대전을 대체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형태의 공모전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만일 새로 만들지 않는다면 기존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모전 중 어느 하나가 미술대전의 공백을 대신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부정적인 행위를 획책하는 무리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계급을 우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미술대전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달리 미술대전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단활동이 여의치 않은 작가들이나 지망생들에게는 창작활동을 위한 유일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미술대전에 출품하고자 일년을 준비하는 그들에게는 비록 사회적으로 물의의 대상이 되고 있을 망정 그림을 그린다는 분명한 하나의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는 미술대전이지만 지혜를 짜내 운영방법을 개선함으로써 지금보다는 나은 형태로 발전시켜 갈 수 있다.

  사회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술대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현재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심사위원 자격을 엄격히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심사위원 연령의 하한선을 60세 정도로 높이는 문제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여러 경로의 화단활동을 통해 객관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만이라도 지켜진다면 문제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연령이 많은 작가들은 시대감각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으나, 이 또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중진 원로들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역일뿐더러 세상에 대한 경험이 많고 안목이 높다고 볼 때 젊은 작가보다 감각이 떨어진다는 시각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덧붙여 미협 이사장 선거와 관련한 논공행상에 휘말리지 않는 선명하고 깨끗한 운영방식을 취함으로써 문제점을 점차 줄여갈 수 있을 것이다.  미술대전을 주최하는 미협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미협 내부에 있다는 지적을 준엄히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문제 해결에 앞서 미술대전을 주최하는 미협의 환골탈태를 기대한다.  그로부터 해결책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신항섭)


<"미술신문" 2001년7월5일(제2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