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39) - 땅거미

펜보이 2007. 7. 21. 09:17
 

  땅거미 薄暮

 

  아주 깊은 산 속에 약초를 캐는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약초를 캐러 다녔다. 글씨를 읽을 줄도 몰랐다. 그렇지만 약초 캐는 일만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토록 귀하다는 산삼도 여러 뿌리를 캤다. 산삼을 팔아 적지 않은 돈도 벌었지만 그 돈은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할아버지는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데서 큰 보람을 느꼈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결혼한 일도 없이 오직 혼자 몸이었기에 무슨 일에나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건강한 몸으로 약초를 캐러 다닐 수 있다는 것만도 큰 행복이라고 여겼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병에 걸려 귀한 약초를 찾으면 아무리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라도 기어이 필요한 약초를 캐왔다. 그래서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할아버지는 산 속에서 살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온갖 산짐승은 물론이요, 새들 그리고 곤충들까지 할아버지의 친구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약초를 판 돈으로 곡식을 사다두었다가 눈이 쌓인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지 못하는 산짐승과 새들에게 풀어주었다. 그래서 겨울철 할아버지의 초막 앞마당에는 으레 산짐승들과 새들의 집합장소가 되었다.

  그러던 한 겨울 어느 날 할아버지는 갑자기 쇠약해져서 더 이상 약초를 캐러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에게 주어진 수명이 끝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혼자 방안에 누워 지내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밤 마침내 깊은 잠에 들었다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이때 동굴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검은 박쥐들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제히 일어나 할아버지의 부음을 가지고 마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을 하늘은 검은 박쥐들의 물결로 서서히 덮이고 있었다. 서산너머에서 멈칫거리던 햇빛도 검은 박쥐들의 무리에 가려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우화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비 꿈 (41) - 물안개  (0) 2007.07.24
나비 꿈 (40) - 여명  (0) 2007.07.23
나비 꿈 (38) - 그림자  (0) 2007.07.20
나비 꿈 (37) - 해일  (0) 2007.07.18
나비 꿈 (36) - 썰물  (0) 2007.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