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41) - 물안개

펜보이 2007. 7. 24. 07:47
 

  물안개 水霧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계림桂林 강가에 초막을 짓고 사는 화가가 있었다. 그 화가 수묵산수화는 천하제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수묵산수화를 한 폭을 갖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그 화가는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완성된 그림이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을 아끼지 않은 그림일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태워버리는 것이었다.

  그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낙원을 그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낙원을 본 일이 없는 그로서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화가는 아침부터 시작하여 점심도 거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거듭거듭 불태우고 말았다. 그러다가 피곤하여 잠시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화가 자신이 안개가 자욱한 강에서 배를 타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음악소리에 맞추어 형형색색의 나비들과 새들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강가에서는 따스한 햇빛아래 이름 모를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음악소리와 새들의 노래, 나비들의 춤 그리고 향긋한 꽃향기가 온 강가에 퍼져나갔다.

  잠시 후에는 어디선가 비단옷을 입은 선녀들이 줄지어 나타나 강물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가는 꿈에도 그리던 낙원의 정경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런데 정말 허벅지가 아팠다. 화가는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붓을 들고 종이에 꿈에 보았던 낙원의 정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무지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현실은 꿈에 보았던 강가의 정서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화가는 꿈속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형체가 낱낱이 드러나는 맑은 강가의 풍경을 눈앞에 두고서는 도저히 감정이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꿈의 정경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화가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고 있을 때 강 위에서 아주 천천히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 밑에서 잠자고 있던 요정들이 잠에서 깨어나 강물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가의 눈에는 그저 희미한 안개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작은 요정들이었다. 요정들의 춤에 가려 강 건너의 나무들이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으로 꿈에 보았던 정경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화가는 정녕 가슴에 가득히 안겨 들어오는 듯한 꿈속의 정경에 도취됐다. 드디어 화가는 붓을 들어 꿈에 보았던 낙원의 정경을 거침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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