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38) - 그림자

펜보이 2007. 7. 20. 07:49
 

  그림자

 

  아주 깊은 산 속에 요괴가 살고 있었다. 요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나쁜 일에 꾀어낼 궁리만 했다.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훼방을 놓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가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사람들의 얘기를 엿들었다.

  요괴는 몸을 감쪽같이 숨기고 다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어도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남의 방에 들어가 가족들 틈에 태연히 끼어 앉아 얘기를 훔쳐 듣는 것쯤이야 요괴에게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날씨가 몹시 추운 어느 날이었다. 이웃마을에 겨우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가 혼자 집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는 비록 겨우 걸어 다니는 정도였지만 몹시 영특해서 엄마아빠의 얘기를 다 알아들었다. 엄마아빠가 그날그날 주의할 점 몇 가지를 일러주면 그대로 따랐다. 엄마아빠는 그런 아기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엄마는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갔다. 아기를 데리고 가려다가 날씨가 너무 추워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싶어 아기를 혼자 집에 두기로 했다. 엄마는 집을 나서기 전에 아기에게 ‘화롯불에는 요괴가 숨어 있으니 절대로 바짝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

  아기는 엄마가 시장에 간 뒤 혼자 놀다가 자신도 모르게 화롯가에 가까이 다가갔다가도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마침 그 때 집 앞을 지나던 요괴는 엄마가 아기에게 ‘화롯불에는 요괴가 숨어 있으니 절대로 바짝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엿들었다. 요괴는 자기 얘기를 하는 아기 엄마에게 심술이 났다. 요괴는 ‘어디 보자’며 방에 들어가 아기를 꾀었다. 그리고는 아기에게 ‘화롯불 안에 아주 맛있는 빨간 사탕이 들어 있느니 꺼내 먹어라’고 말했다.

  아기는 맛있는 빨간 사탕이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엄마가 일러준 말을 깜빡 잊고 말았다. 아기는 사탕을 꺼내려고 화롯불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아기 손에 잡힌 것은 재속에 숨어 있는 빨간 숯불덩이였다. 아기는 그만 손을 크게 데고 말았다.

  이처럼 못된 짓만 일삼는 요괴소식을 들은 옥황상제는 벌을 내리기로 했다. 옥황상제는 요괴에게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기다란 검은 색 망토를 달아주었다. 검은 색 망토는 요괴가 어디를 가든지 빛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그 모습이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요괴는 빛이 있는 곳에서는 다시는 숨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요괴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더 이상 몰래 나다닐 수도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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