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36) - 썰물

펜보이 2007. 7. 16. 08:01
 


  썰물 退潮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위섬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고 했다. 바닷가 마을 사람 중 그 누구도 인어를 본 일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은방울처럼 맑은 인어의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인어는 달밤에만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인어이야기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전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인어는 실제로 존재했다. 용왕의 딸인 인어공주는 달빛과 별빛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섬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인어공주는 별처럼 반짝이고 수정처럼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인어공주의 눈망울을 본다면 거기에 빠져들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을 것이었다. 마침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느 날 바위섬 근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청년이 갑자기 몰아친 돌풍에 그만 배가 뒤집혀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청년은 부서진 배의 나무 조각을 잡고 헤엄쳐 간신히 바위섬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바위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나무 몇 그루와 이름 모를 꽃들만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 돌아온 청년은 지친 몸을 바위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그런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청년은 추위를 느껴 잠에서 깨어났다. 누운 채 눈을 뜨고 보니 어느 새 밤이 되어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고, 아기 조막만한 별들은 바로 자신의 이마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청아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은방울소리 같은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청년은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 긴 머리의 인어아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 별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옛 얘기로만 들어온 인어아가씨였다. 청년이 다가가도 인어아가씨는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수정처럼 맑은 눈으로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청년은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인어아가씨의 눈빛에 사로잡혀 끌려가듯 다가갔다. 청년이 다가와서 손을 잡아도 인어아가씨는 뿌리치지 않았다. 청년과 인어아가씨는 두 손을 잡은 채 마주 보며 밤을 새웠다. 새벽이 되었다. 먼동이 트자 인어아가씨는 바다 속으로 되돌아갔다. 청년은 꿈을 꾸듯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인어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용궁으로 돌아간 인어공주는 아버지 용왕에게 청년을 마을로 돌려 보내주라고 간청했다. 용왕은 딸의 청을 들어주었다. 용왕은 신하를 시켜 바위섬 부근의 바닷물을 줄어들게 하였다. 바닷물이 서서히 줄어들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바닷물이 갈라지면서 바닷가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환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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