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31) - 낮달

펜보이 2007. 7. 9. 22:30
 

  낮달 晝月

 

  한 마을에 연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연을 만들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연을 만들었다. 연 만드는 솜씨는 할아버지 집안의 내력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결혼을 하고서도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러기에 연 만드는 솜씨를 물려줄 수 없었다. 이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연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할아버지는 하나라도 연을 더 만들고자 손을 놓지 않았다. 연날리기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기꺼이 연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못 만드는 연이 없을 정도였다. 네모난 연은 물론 세모난 연, 그리고 둥근 연, 뿐만 아니라 새 모양과 나비 모양 심지어는 용 모양의 연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종류의 연을 만들었는지 그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연 만드는 일이 점차 힘들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궁리 끝에 이제까지 만든 그 어떤 연보다도 크고 아름다운 연을 하나 만들기로 작정했다.

  할아버지는 이웃집 초가지붕에 탐스럽게 익은 둥그런 박 모양의 연을 만들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되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연을 보여주겠다고 알렸다.

  마을 시냇가에는 동네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이웃마을사람들까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큰 둥그런 박 모양의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너무 커서 제대로 볼 수 없던 연이 하늘로 올라가자 정말 탐스럽게 익은 박 모양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을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아이들은 파란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박 모양의 연을 넋 빠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해 침을 흘리기도 했다.

  그 때였다. 마을을 지나던 심술궂은 바람이 갑자기 힘껏 연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팽팽하던 연실이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해 ‘툭’ 끊어지고 말았다. 연은 중심을 잃은 채 흔들리면서 끊어진 연실을 끌고 산 너머로 아득히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둥그런 박 모양의 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몹시 슬퍼했다. 어떤 아이는 엉엉 소리 내어 울기까지 했다.

  할아버지는 그날 밤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날 마침 구름을 타고 마을 위를 지나던 신선이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신선은 아무도 몰래 도술을 걸어 하늘 높이 날아간 박 모양의 연을 찾아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다음 날이었다. 개울가를 지나던 한 아이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박 모양의 연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마을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마을사람들은 하늘에 걸려 있는 박 모양의 연을 보며 할아버지가 환생한 것처럼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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