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8) - 진눈깨비

펜보이 2007. 7. 6. 22:35
 


  진눈깨비 雨雪

 

  아주 깊은 숲 속에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사냥꾼은 총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아무리 날쌘 짐승일지라도 사냥꾼의 눈에 띄기만 하면 단 한방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사냥꾼은 가난했다. 사냥솜씨로 말하자면 천하에 그를 따를 자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사냥꾼은 아무 짐승이나 닥치는 대로 잡는 것이 아니었다. 새끼는 잡지 않았다. 새끼를 밴 어미도 잡지 않았다. 늙고 힘없는 짐승도 잡지 않았다. 사냥꾼은 힘 좋고 건강한 짐승만 잡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먹을 양식이 떨어져야만 사냥을 나섰다. 그러다 보니 돈을 모을 턱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아랫마을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며 움직이지도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장아저씨는 사냥꾼을 찾아와 ‘호랑이 고기를 먹어야 낫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구할 수 없느냐’고 사정얘기를 했다. 사냥꾼도 아직까지 호랑이는 잡아 본 일이 없었다. 사냥하다가 몇 번 멀리서 호랑이를 본 일은 있으나 워낙 빠른데다가 사나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냥꾼은 병든 할아버지를 위해 호랑이 사냥을 나섰다. 하지만 날씨가 나빴다. 초겨울인데다가 비까지 내려 몹시 기분 나쁜 날이었다. 이런 날 사냥을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오는 날에는 호랑이는커녕 작은 짐승들조차 자기 집에서 쉬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냥꾼은 병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사냥꾼은 언젠가 호랑이를 보았던 곳으로 갔다. 그러나 비 내리는 날 호랑이라고 바깥출입을 할 리 없었다. 호랑이를 찾아 한 참을 헤맸지만 역시 소용없는 짓이었다. 허탕을 친 사냥꾼은 호랑이 사냥을 포기하고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 때 뜻밖에도 멀리 먹이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호랑이와 마주쳤다. 사냥꾼은 두려움도 없이 재빨리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호랑이는 정말 비호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비가 내리는데다가 낙엽으로 덮인 숲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찾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눈앞에서 호랑이를 놓친 사냥꾼은 낙심했다.

  그러고 있을 때였다. 마침 멀리 북쪽 산 너머 높은 하늘에서 쉬고 있던 차가운 바람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빗방울을 얼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은 빗방울은 하나 둘씩 눈으로 변했다. 빗물에 섞여 내리는 눈 덕분에 사냥꾼은 어렵지 않게 호랑이 발자국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사냥꾼은 백발백중의 총 솜씨로 아주 건강하고 힘차게 보이는 호랑이를 잡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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