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6) - 가랑비

펜보이 2007. 7. 5. 14:32
 


  가랑비 細雨

 

  겨우 걸음을 떼기 시작한 건강한 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제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아빠가 아침식사를 할 때면 신이 나서 보라는 듯이 방안을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그러면 아빠는 밥을 먹다가도 아기를 번쩍 들어올려 ‘커서 장군이 될 녀석’이라며 즐거워했다. 그러면 아기는 더욱 신이 나서 좀 더 빨리 걸음을 떼다가 넘어지기 일쑤였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 새 혼자 밥을 떠먹을 만큼 큰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처럼 건강하던 아이에게 그만 몹쓸 병이 찾아들었다. 아이는 열이 나고 몸이 아파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아빠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병이 나았다. 아이는 얼른 일어나서 걸어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한 쪽 다리가 힘이 약해져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그만 소아마비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아이는 더 이상 마음대로 걸을 수 없었고 더구나 혼자서는 바깥에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방안에서만 놀아야 했다. 엄마아빠가 손을 잡아주어야만 간신히 바깥에 나갈 정도였다. 그러니 엄마아빠가 일하러 나가고 나면 하루 종일 혼자서 방안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엄마아빠가 일을 나가면 아이가 혼자 지낸다는 것은 이미 동네가 다 아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사는 집 뜰에 놀러왔던 나비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아이가 사는 동네를 지나던 구름 또한 나비들의 얘기를 듣고 아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구름은 아이의 손을 잡아 산으로 들로 강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구름에게는 그럴 재간이 없었다.

  구름은 아이가 살고 있는 마을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빗방울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름이 만드는 작은 빗방울은 아이의 창문을 살며시 두드렸다. 그러자 누워 있던 아이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는 누구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뜻밖의 손님에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빗방울은 아이의 손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아이는 부드러운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아빠의 손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생전 처음 만져보는 색다른 느낌에 하염없이 손을 내맡기고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구름은 그만 눈시울이 젖어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구름의 눈물은 빗방울에 섞여 아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아주 따뜻하게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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