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7) - 소낙비

펜보이 2007. 7. 5. 14:35
 

 

  소낙비 驟雨

 

  아주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바다에서 살고 있는 아기거북이가 엄마하고 바닷가 숲 그늘로 더위를 피해 바닷물에서 나왔다. 숲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처음 밟아보는 폭신폭신한 모래 위를 걷는 일은 쉽지 않지 않았다. 발이 빠지는가 하면 모래가 무너져 내리는 곳도 있었다. 엄마거북이는 힘겨워 하는 아기거북이를 내버려둔 채 먼저 숲 그늘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거북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만에야 엄마거북이가 쉬고 있는 숲에 도착했다. 엄마거북이는 아기거북이가 도착하기도 전에 숲 그늘이 너무 시원한 나머지 단잠에 빠져들었다. 아기거북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은 형형색색의 나비들과 새들의 노랫소리로 넘쳤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아기거북이에게는 숲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나온 나들이였기에 숲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풀들은 아기거북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드러운 몸을 뒤로 젖혀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런가 하면 나비들은 춤을 추며 여기저기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으로 안내했다. 아기거북이는 갖가지 형태와 색깔로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들에 정신을 빼앗겨 점점 더 숲 속 깊이 들어갔다.

  아기거북이는 꽃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달콤한 향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아기거북이는 달콤한 꽃향기에 취해 그만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았다.

  한편 시원한 숲 그늘에서 잠에 골아 떨어졌던 엄마 거북이는 숲에서 퍼져 나오는 꽃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단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아기거북이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엄마거북이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기거북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엄마거북이는 아기거북이를 기다리다가 문득 자신이 잠든 사이에 바다로 돌아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숲을 떠나 혼자 바다로 되돌아갔다.

  그때까지도 숲 속에서 돌아다니던 아기거북이는 갑자기 엄마생각이 났다. 그제야 숲 속에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기거북이는 무서워졌다. 아기거북이는 서둘러 숲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바다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아기거북이가 잔뜩 겁에 질려 있을 때였다.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나타나 바다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아기거북이는 나비를 따라 간신히 숲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기거북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다로 향했다. 뜨거운 햇빛은 아기거북이의 등을 태울 것만 같았다. 아기거북이는 점점 힘이 빠졌다. 바다까지는 아직도 한참 더 가야만 했다. 그러나 아기거북이는 이제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땀조차 나지 않고 온 몸은 말라 들어갔다. 지치고 힘이 빠진 아기거북이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때마침 숲을 지나 바다 쪽으로 가는 한 점의 조각구름이 쓰러진 아기거북이를 보았다. 조각구름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큰 비구름을 만들더니 아기거북이를 향해 힘차게 굵은 빗물을 쏟아 부었다. 뜨거운 모래밭에 쓰러져 있던 아기거북이는 차가운 빗물을 맞고는 정신을 차렸다.

  기운을 차린 아기거북이는 남은 힘을 다해 바닷물을 향해 기었다. 빗물에 젖어 단단해진 모래밭은 아기거북이의 걸음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었다. 골진 모래밭에 이르자 빗물은 도랑을 만들어 아기거북이를 가볍게 바다로 띄워다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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