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5) - 우박

펜보이 2007. 7. 4. 11:02
 

  우박 冰포

 

  태어날 때부터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아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기는 보이지 않는 사실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혼자서 손과 발을 가지고 노는 일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아기가 점점 커가자 손으로 물건을 만지면서 형태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아빠는 아기를 위해 나무를 깎아 조그만 인형을 만들어주었다. 아기는 나무인형을 통해 사람의 모양을 익힐 수 있었다. 가난한 엄마 아빠는 날마다 일을 나가야만 했기에 아기 혼자 노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아기는 나무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재미있게 놀았다.

  아기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 아이가 되었다. 엄마가 일을 나가기 전에 준비해 놓은 점심도 혼자서 찾아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손끝으로 만져 새로운 형태를 알게 되는 일이 몹시 즐거웠다. 그래서 집에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 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부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마시는 일조차 기뻐했다. 어쩌다 심술궂은 바람이 아이의 얼굴을 차갑게 할퀴고 지나가도 도무지 화내는 일이 없었다. 아이에게는 바람의 심술마저도 흥미로웠던 것이다. 바람은 아이를 놀려주려고 창문을 힘차게 흔들어 대기도 했다. 바람이 거칠게 불 때마다 문이 덜커덩거렸지만 무서워하기는커녕 아이는 신기하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창문 앞 나뭇가지를 흔들어댈 때마다 나뭇잎들이 부산스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 일마저 아이에게는 즐거웠다. 그래서 방안에서 놀다가 심심해지면 창밖으로 손과 얼굴을 내놓고 바람이 찾아와 장난을 걸어오기를 기다리는 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창문 앞까지 팔을 뻗치고 있는 나뭇가지에서 잠시 쉬고 있던 새들이 바람과 놀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한참 동안 아이를 지켜보던 새들은 고개를 맞대고 아이가 좋아할 수 있는 무슨 또 다른 일이 어디 없을까 궁리를 했다. 그러다가 새들은 무슨 좋은 생각이 났는지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일제히 북쪽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여름이 가고 초가을에 접어들었다. 그 날도 아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창밖으로 손을 내놓고 바람의 심술궂은 장난을 즐겼다. 바람은 이번에는 창밖으로 내미는 아이의 손을 차갑게 얼렸다. 너무 차가워 손가락 끝이 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차갑다고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함께 놀아주는 바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아주 차가우면서도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갑자기 손등을 때리는 얼음 알갱이들이 차갑고 너무 따가워 손을 움츠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에 잡힌 얼음 알갱이들은 이내 녹아 물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처음 만져보는 얼음 알갱이가 신기했다. 아이는 손이 새파랗게 어는 줄도 모르고 손바닥과 손등을 두드려대는 얼음 알갱이들의 장난에 홀딱 빠져들었다.

  아이가 즐거워하고 있는 그 시간에 아주 높은 하늘에서는 창문 앞 나뭇가지에서 쉬어 갔던 새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를 향해 얼음 알갱이를 떨어뜨리고 있는 중이었다. 먼 북쪽 얼음 동산에서 물어온 얼음 알갱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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