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霜
깊은 동굴 속에 한 도둑이 살고 있었다. 도둑은 힘이 장사였다. 힘이 셀뿐만 아니라 키는 칠 척인데다가 수염은 다섯 자는 너끈히 되고도 남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은 삼국지의 장비를 닮은꼴이었다. 그러나 비록 도둑질을 해서 살아갈망정 생김새와는 달리 사리분별력은 있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더라도 인심이 사나운 부잣집만을 골라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도둑을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인심 사나운 부잣집만을 골라서 물건을 훔친다고 해도 도둑은 도둑이었다.
겨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어느 날, 밤이 이슥해지자 도둑은 동굴에서 나와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먼 마을 부잣집을 털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밤새 길을 재촉해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에야 마을에 도착했다.
도둑은 담을 넘어가 인색한 부잣집 창고에서 쌀을 한 자루 담아 어깨에 메고 의기양양해서 되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인색한 부잣집 주인은 도둑을 잡기 위해 안마당에 밀가루를 뿌려놓았다. 이를 모르는 도둑은 대문을 열고 나가려고 안마당을 지나다가 밀가루를 밟고 말았다. 커다란 도둑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혔다. 도둑은 이를 금세 알아차렸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생각했지만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끝장이었다. 도둑은 어떻게 할까 고민에 빠졌다.
그 때 마침 인심 사나운 부잣집 곳간을 털어다가 밥을 굶는 건너 마을 할아버지에게 주려고 왔던 도깨비가 도둑과 마주쳤다. 도깨비는 도둑에게 한 걸음 뒤진 데 화가 났다. 도깨비는 도둑이 훔친 쌀을 빼앗을 궁리를 했다. 도깨비는 고민에 빠진 도둑에게 ‘씨름을 해서 내가 이기면 그 자루를 내게 주고, 내가 지면 네 발자국을 지워주겠다’고 했다. 도깨비는 도둑이 아무리 힘이 셀지라도 나를 당해내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도둑은 도깨비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도둑은 힘자랑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장사였다.
도둑과 도깨비는 밭에 나가 씨름을 했다. 도둑과 도깨비는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꾀가 많은 도깨비일지라도 힘이 장사인 도둑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씨름에서 진 도깨비는 약속대로 도둑의 발자국을 지워주기로 했다.
도깨비는 있는 힘을 다해 인색한 부잣집 안마당을 향해 입김을 불어댔다. 그러자 차가운 밤공기는 도깨비의 입김을 하얗게 얼렸다. 하얗게 언 도깨비의 입김은 도둑의 발자국이 찍힌 밀가루를 감쪽같이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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