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3) - 이슬

펜보이 2007. 7. 2. 18:09
 

  이슬 露 

 

  밤이 되자 숲 속에 꼬마요정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꼬마요정들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모여 춤과 노래를 부르며 밤새껏 신나게 노는 것이 일이었다.

  꼬마요정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커다란 나무들 밑에서 오밀조밀 살아가는 아주 작은 풀들 위를 뛰어 다니는 일이었다. 나이가 먹어 허리가 굽은 풀들의 등을 건너 뛰어 다니는 일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풀들 위에 폴싹 폴싹 뛰어내리면 허리 굽은 풀들은 힘겨운 나머지 아래로 몸을 낮게 굽혔다가 있는 힘을 다해 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꼬마요정들은 깔깔거리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허리가 굽은 풀들은 자신이 귀여운 꼬마요정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 조금도 힘겹게 생각되지 않았다. 만일 꼬마요정들이 찾아와 주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하품만 하고 지낼 형편이었다. 아니, 아무런 생각 없이 졸기만 하다가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라도 떨어져 몸을 덮치게 되면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 신세였다. 어디 그뿐이랴. 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 부르는 새들이 똥이라도 싸면 똥바가지를 덮어쓰는 일도 예사였다. 이런 처지에 꼬마요정들이 놀러와 주는 것만도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지 몰랐다.

  꼬마요정들이 등위에 뛰어내릴 때마다 허리 굽은 풀들은 힘껏 위로 밀어 올려주었다. 꼬마요정들은 굽은 허리를 펼 때 생기는 퉁겨내는 힘으로 마치 널뛰듯이 가볍게 몸을 솟구칠 수 있었다. 그런 힘으로 옆에 있는 풀들은 물론이요, 저만치 떨어져 있는 풀들에까지도 쉽게 건너뛰어 다닐 수 있었다.

  숲은 풀들과 꼬마요정들의 놀이로 밤마다 법석이었다. 그러다 보면 허리 굽은 풀들은 온통 땀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허리 굽은 풀들과 꼬마요정들은 지칠 줄을 모르고 밤새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밤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꼬마요정들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보면 머지않아 날이 밝아지고는 했다.

  꼬마요정들은 숲을 떠나기 전 아침마다 밤새 별들이 만들어 내려주는,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수정알갱이들을 모아다가 땀으로 범벅이 된 허리 굽은 풀들의 세숫물을 만들어주었다. 쓰고 남은 허리 굽은 풀들의 세숫물은 은구슬이 되었다.

  이윽고 해님이 고개를 내미는 아침이 되면 허리 굽은 풀들은 세수를 하고 말쑥한 차림이 되었다. 어여쁜 은구슬들이 허리 굽은 풀들의 얼굴을 씻겨주고 나서 몸을 굴려 땅으로 뛰어내릴 때마다 숲은 온통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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