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1) - 번개

펜보이 2007. 7. 1. 09:25
 

  번개 閃光

 

  어느 조그만 섬 마을에 노총각이 혼자 살고 있었다. 노총각은 아주 조그만 고깃배 하나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노총각에게는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이 있었다. 그 가슴 아픈 사랑을 못 잊는 나머지 혼자 사는 것이었다.

  노총각은 아주 어릴 적 이웃마을에 심부름 갔다가 눈이 별처럼 빛나는 여자애를 보았다. 처음 본 순간 숨이 다 멎는 줄 알았다. 그만 첫눈에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마을 길 거리에서 바람처럼 스치듯 지나가며 옆모습 한번 흘낏 훔쳐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럴수록 노총각은 여자애를 마음속 깊이 연모했다.

  어느덧 청년이 된 노총각은 어느 날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닷가 바위 절벽을 지나다가 우연히 바위틈에 피어난 노란 꽃을 꺾으려는 아리따운 처녀를 보았다. 어느새 매력적인 처녀로 성장한 이웃마을 여자애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것이었다. 어깨가 떡 벌어진 청년이 된 노총각은 벼랑에 핀 노란 꽃을 꺾어주며 주저 없이 사랑을 고백했다.

  너무 뜻밖의 고백을 듣게 된 여자애는 두 볼이 발개질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없이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청년이 된 노총각은 여자애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청천벽력 같은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여자애가 뭍에 있는 시장에 나가다가 돌풍이 배를 덮쳐 그만 바다에 빠져죽고 만 것이었다.

  노총각은 그 때부터 여자애만을 생각하며 혼자 살고 있었다. 노총각은 여자애가 그리우면 바닷가 절벽에 가곤 했다. 그리고는 노란 꽃을 받아든 채 얼굴을 붉히던 여자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총각은 땅거미가 내릴 무렵 여자애를 생각하며 절벽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아주 크고 밝은 빛줄기가 세상을 대낮처럼 밝히는가 싶더니 바로 눈앞의 절벽에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를 내며 바위절벽이 무너져 내렸다. 노총각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노총각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위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아, 바위 절벽에는 뜻밖에도 수줍은 듯이 미소 짓는 여자애의 얼굴모양이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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