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2) - 천둥

펜보이 2007. 7. 2. 18:06
 

  천둥 雷

 

  어느 깊은 산중에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이 살고 있었다. 노인은 날마다 눈을 감고 앉아 명상에 잠기는 것이 일이었다. 물론 농사철이 되면 농사를 지었다. 농사라고 해봤자 옥수수와 감자를 심어놓고 한 두 차례 김을 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서 눈을 감고 앉아 명상에 잠기곤 했다.

  이러한 노인을 두고 아랫마을 사람들은 ‘도인’이라고 불렀다. 도를 닦는다는 것이었다. 노인이 축지법을 쓴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이 도술을 부리는 것을 직접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소문과는 상관없이 노인은 항상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농사를 짓고 산다는 점에서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수확의 계절이 되어 자신이 먹고 지낼 만큼만 거두어들인 뒤 나머지는 그대로 밭에 놔두었다. 밭에 남겨진 감자와 옥수수는 날짐승이며 산짐승들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수확이 끝나고 나면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의 집 주변은 날짐승들과 산짐승들의 푸짐한 잔치마당이 되고는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노인은 앉아 지내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대신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농사철이 되었건만 노인은 옥수수와 감자를 심을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날짐승들과 산짐승들이 갖가지 열매며 약초뿌리를 가져다가 노인에게 드렸다. 하지만 노인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어느 날 노인은 반듯하게 누운 채 아주 평안하게 다시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이튿날 열매를 물고 왔던 새 한 마리로부터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 소식을 들은 날짐승들과 산짐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일제히 땅을 치며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천지가 진동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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