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15) - 무지개

펜보이 2007. 6. 28. 16:12
 

  무지개 虹

 

  결혼을 앞둔 처녀는 아침나절부터 개울가 빨래터에서 이부자리 속감을 빨아 널고 있었다. 혼수로 가져 갈 이부자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양잿물에 삶아내어 눈부시게 하얘진 옥양목 이부자리 속감은 자갈밭에 누워 따스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빨래가 얼마나 하얗든지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해님의 눈이 다 시릴 지경이었다.

  흥얼거리는 처녀의 콧노래 소리에 장단 맞춰 빨래를 두들겨대는 방망이도 저절로 신이 났다. 빨래를 시작한지 한 나절이 지나고 있었지만 처녀는 도무지 힘든 줄을 몰랐다. 다만 신혼생활을 머릿속에 그리며 혼자서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흘리고는 했다. 그리고는 누가 보는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다가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개울가 이곳저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그 모양을 훔쳐보고 있다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처녀는 들꽃들에게 속마음을 들킨 게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처녀는 신혼여행을 가서 신랑과 보낼 꿈같은 시간을 상상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녀는 혹시 다른 누가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황망히 일어나 주변을 살피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애써 빨아 넌 이부자리 속감 위에 넘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얀 이부자리 속감 옆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던 형형색색의 들꽃들을 쓰러뜨리고는 그 위에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처녀의 행동을 지켜보며 웃음을 터뜨리던 들꽃들은 그만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처녀가 엉덩방아를 찧었던 자리, 하얀 이부자리 속감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들꽃 꽃물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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