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12) - 물

펜보이 2007. 6. 27. 13:49
 

  물 水

 

  아주 먼 옛날, 풀 한 포기도 나지 않는 메마른 땅이었을 때였다. 풀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살지 않는 죽은 땅뿐인 세상이었을 때였다.

  그 메마른 땅 한 가운데 아주 거대한 바위덩이 하나가 땅에 깊이 묻혀 있었다. 바위덩이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꿈이었다. 하지만 바위덩이의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바위덩이는 결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꼬박 밤을 새워도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 그리고 새벽녘이면 하늘에 뿌리는 차가운 별들의 세숫물을 받아 몸 깊숙이 채워 넣고는 했다.

  거대한 바위는 물이 몸에 가득 차면 언젠가는 하늘에 떠다닐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바위에 대한 소문은 별나라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쩌다 별나라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꽃씨며 풀씨는 거대한 바위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거대한 바위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주 먼 하늘에서 별 조각 하나가 떨어져 거대한 바위를 힘껏 내려쳤다. 거대한 바위는 별 조각에 맞아 그만 몸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별 조각에 맞은 거대한 바위의 상처에서는 맑고 하얀 피가 흘렀다. 흘러내린 피는 거대한 바위 주변의 땅을 적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얀 핏물은 점점 넓은 땅을 적셨다.

  그러고 나서 얼마가 지났을까, 하늘을 떠돌아다니다가 거대한 바위 주변에 모여들었던 꽃씨와 풀씨가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의 주변에는 갑자기 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꽃과 풀들이 자라나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거대한 바위는 자신의 상처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지 않았다. 어느 별들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자기 주변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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