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13) - 눈

펜보이 2007. 6. 27. 14:00
 

  눈 雪

 

  심심산골 외딴 곳,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혼자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자식도 없이 산골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할머니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혼자서는 먹고 남을만한 밭을 일구며 살았다. 채소나 감자 옥수수 따위를 가꾸어 수확하면 혼자 먹을 만큼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많은 가난한 이웃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아주 먼데서 스님이 찾아왔다. 친척도 아니오, 그렇다고 해서 알고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스님은 새로 지을 절터를 찾아 명산대천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스님이 할머니 집에 손님으로 온 것은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갈 곳을 정해놓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해가 지는 곳이 바로 스님이 머무는 하룻밤 잠자리였다. 물론 집이 없는 들길이나 산길에서 해가 지면 바로 그곳이 스님의 잠자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참으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손님에게 대접할 저녁상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하지만 산골에서 밭농사나 지으며 사는 할머니에게는 귀한 손님상에 마땅히 내놓을만한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한참 생각 끝에 벽장에 두었던 한 줌의 밭벼를 꺼내어 절구통에 찌어 정성껏 밥을 지었다.

  밭벼는 남편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조그만 밭뙈기에다 심어 수확한 것이었다. 남편 제사상에 올려야 할 터이었으나 할머니는 남편이 이해해주리라 믿고 기쁜 마음으로 쌀밥을 지어 상을 차렸다. 스님은 시장하던 터라 할머니가 정성 들여 지어낸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에는 정말 귀한 쌀로 지은 밥이었다. 스님이 밥을 먹고 있는 사이에 하얀 쌀밥 냄새는 문틈을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수만 마리 하얀 나비 떼가 춤을 추며 하늘로 오르는 흰쌀밥 냄새를 까마득히 좇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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