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11) - 불

펜보이 2007. 6. 26. 11:28
 

  불 火

 

  아주 깊은 산 속 벼랑 높은 곳에 아기 주먹만한 하얀 차돌이 박혀있었다. 그 하얀 차돌은 밤낮으로 자신의 몸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는 것이 일이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에는 더욱 반짝이도록 몸을 닦으면서 따스한 기운을 몸 속 가득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해님처럼 밝고 따뜻한 빛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꿈에 사로잡혔다.

  그런 꿈에 취한 나머지 밤에도 잠들지 않고 이슬로 몸을 씻고는 달빛과 별빛을 받아들였다. 하얀 차돌은 얼마나 깨끗했던지 달님과 별님들이 얼굴을 다 비춰볼 정도였다. 하얀 차돌은 자신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옆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냈지만 하얀 차돌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꽃들은 저마다 온갖 색깔로 화장을 하고 나서서 바람을 유혹하고 나비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처럼 아름다운 꽃들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만 볼품없는 모양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럴수록 하얀 차돌은 자신이 못내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어디선가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하얀 차돌의 몸에 앉는 것이었다. 하얀 차돌은 벼랑 바위틈에 끼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던 터였다. 하얀 차돌은 자신보다 무거운 새를 등에 업은 탓에 힘이 부쳤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견디어 보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졌다.

  그런데도 새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얀 차돌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얀 차돌은 더 이상 견딜힘이 없어 그만 바위틈에 낀 몸을 떨구고 말았다. 하얀 차돌은 여지없이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는 몸이 깨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우연히도 땅에 몸이 반쯤 박혀 있는, 자기와 비슷한 또 다른 하얀 차돌 위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 순간 하얀 차돌에서는 그 동안 몸속에 쌓아두었던 해님의 뜨거운 기운이 일시에 뛰쳐나왔다. 차돌 속에서 뛰쳐나온 뜨거운 기운은 마침 옆에 있던 아주 부드러운 마른풀에 떨어져 까맣게 태우면서 뜨겁고 빨간 꽃 너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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