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 8) - 은하수

펜보이 2007. 6. 25. 12:02
 

  은하수 銀河水

 

  어느 고원에 자식 없는 노부부가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노부부는 학교에 다닌 일이 없고 누구한테 글을 배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바깥 세상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채 살았다. 어쩌다가 소금이나 불을 켜는데 필요한 기름 따위를 사러 읍내에 나갈 뿐,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들꽃을 벗 삼아 지낼 뿐이었다. 그런데도 외롭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다. 오직 절기를 놓치지 않고 농사에만 열심이었다.

  노부부에게는 꽃을 가꾸는 일이 가장 큰 소일거리였다. 노부부는 자식이 없는 대신에 꽃을 가꾸는데서 큰 기쁨을 맛보았다. 조그만 씨앗에서 새싹이 나와 줄기와 잎이 돋아나고 마침내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양의 꽃잎을 피워내는 과정을 보면 세월이 가는 줄조차 잊었다.

  노부부는 울긋불긋한 색깔보다는 흰 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하얀색 꽃만을 가꾸었다. 어쩌다 바람에 날아온 붉은 색깔의 꽃씨가 자라 하얀색 꽃 사이에 섞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집에서 먼 곳에다 옮겨 심었다. 그러기에 멀리서 노부부의 집을 보면 이불빨래를 널어놓은 듯 온통 하얀색 꽃물결이었다.

  그 하얀색 꽃들은 밤이 되면 차가운 이슬에 몸을 떨었다. 그럴 때마다 땅으로 굴러 내리는 이슬은 은방울 소리를 내었다. 이슬이 굴러 떨어지며 울리는 은방울 소리는 밤기운을 타고 멀리 멀리로 퍼져나갔다.

  그 은방울 소리는 잠자는 달님 창가에도 기웃거렸다. 달님은 꿈을 꾸면서도 맑고 아름다운 은방울 소리에 취했다. 은방울 소리는 잠자는 달님의 얼굴을 곱게 씻어주었다. 달님은 꿈길에 동아줄을 엮어 하늘로 은방울 소리를 길어 올렸다. 달빛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가는 은방울소리는 큰 시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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