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5) - 해

펜보이 2007. 6. 25. 11:59
 

  해 太陽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따뜻한 기운이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북쪽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며칠 째 온통 안개에 잠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북쪽으로 올라오던 따뜻한 기운조차 안개에는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따뜻한 기운은 무겁고 침울한 습기를 머금은 안개에 막혀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무와 풀뿌리 그리고 곡식이며 풀의 모양을 한 보따리씩 끌어안고 있는 갖가지 씨앗들은 안개와는 상관없이 땅속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땅을 꽁꽁 얼렸던 눈이 녹아내려 생긴 물을 힘차게 길어 올리는 뿌리와 씨앗들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 사이에서 지난가을에 떨어진 꽃나무 열매들도 말라비틀어진 채 겨우내 추위에 떨다가 눈 녹은 물로 서서히 몸집을 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 끝에 봉긋하니 움틀 채비를 하고 있는 꽃망울들도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귀를 쫑긋이 세우면서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꽃망울들은 저마다 봄나들이에는 어떤 모양의 옷으로 치장할까 궁리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꽃망울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 어머니 어머니를 흉내 내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지 못했다. 꽃망울들은 아직 봄나들이를 해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그러면서도 빨리 세상을 구경을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꽃망울들이 얼마나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던지 따뜻한 기운을 가로막고 버티던 안개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몸을 풀고 말았다.

  이때를 놓칠세라 움츠리고 있던 봄기운이 일시에 사방으로 뻗치면서 꽃망울들을 감금해 놓은 자물쇠를 몽땅 풀어 버렸다. 그러자 꿈에 취해 떠들어내던 꽃망울들은 마치 봇물 터지듯이 문을 박차고 방을 나오면서 일제히 저마다 다른 색깔의 양산을 활짝 펴들었다. 그러자 세상은 순식간에 눈이 시리도록 밝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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