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집

나비 꿈 (2) - 소리

펜보이 2007. 6. 25. 11:55
 

  소리 音

 

  히로사와平澤라는 왕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왕대나무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 어떤 곳은 대나무 숲에 마차가 다닐 만큼 널따란 굴이 뚫려 있을 정도였다. 이 왕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여자아이가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대나무 막대기는 겉이 매끄럽고 가벼워 여자아이가 가지고 놀기에는 딱 좋았다. 여자아이는 대나무 막대기를 손으로 쓰다듬는가 하면 얼굴에 대보기도 했다. 얼굴에 닿을 때의 그 차가운 감촉이 너무 좋았다. 여자아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대나무 막대기가 아주 가볍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다른 나무막대기로 두드려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여자아이는 문득 대나무 막대기의 속이 무척 궁금했다. 여자아이는 아버지에게 대나무 막대기의 마디 사이를 잘라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대나무 막대기를 잘라주었다. 잘린 대나무 막대기는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자아이는 잘린 대나무 막대기 속을 신기한 듯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나이테를 두른 다른 나무들과 달리 속이 비어 있어서 실망했다. 무엇인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 것도 없어 무척 섭섭했다.

  그러다가 여자아이는 햇볕이 따사로운 양지 곁에서 대나무 막대기를 가슴에 안은 채 잠이 들었다. 여자아이는 대나무가 자신의 가슴에서 빠져나가 춤을 추고 있는 꿈을 꾸었다. 대나무 막대기는 아주 가볍고 경쾌한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대나무 막대기가 춤을 추자 어디에서인가 바람 한 줄기가 꽃향기를 싣고 왔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안고 있는 잘린 대나무 막대기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잘린 대나무 막대기 속에서 곱고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아이는 꿈결에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귀를 간지럽히는 곱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다. 여자아이는 눈을 뜨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꿈결에 들었던 바로 그 소리가 가슴에 안고 있는 잘린 대나무 막대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속이 텅 빈 대나무 막대기가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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